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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서안나 시인 / 아우슈비츠의 문장들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25.

서안나 시인 / 아우슈비츠의 문장들

 

 

왼쪽으로 간 사람들은 역에서 곧바로 화장터로 직행했다.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손을 씻으면 왼쪽이 수상하다.

 

인간의 두 손엔 배신의 역사가 산다.

짐승과 해산물과 강물을 배신하고

사람과 신선초와 지구를 배신한다.

 

동료 수감자에게

나치보다 더 잔인했던 카포.

카포의 손엔 늘 죽음의 채찍이 들려있었다.

 

배신은 왼쪽에서 오고

죄가 묻은 손은 밤에도 검다.

카포는 두려움에서 탄생한다.

 

내 손목을 문지르면

피 묻은 나쁜 손이 있다.

 

손을 씻으며

폭력에 대하여, 아우슈비츠에 대하여, 굴욕에 대하여 생각했다.

 

내 안의 죽은 것들이 따라 젖는다.

지문이 진해진다.

내 안의 카포.

 

누군가 내게 악수를 청했다.

손을 내밀지 않았다.

 

kapo: 나치수용소 집결캠프(Concentration Camp)에서, 동료 포로를 감독하는 사람.

 

계간 『문학과 사람』 2019년 봄호 발표

 

 


 

서안나(徐安那) 시인

1990년 《문학과 비평》겨울호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푸른 수첩을 찢다』, 『플롯 속의 그녀들』, 『립스틱 발달사』, 동시집 『엄마는 외계인』,동시집 『엄마는 외계인』과 평론집 『현대시와 속도의 사유』, 연구서 『현대시의 상상력과 감각』, 편저『정의홍전집 1․2』가 있고 『전숙희 수필선집』엮음. 현재  <서쪽>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