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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배 시인 / 물버스 정류장
불룩한 그림자를 끌고 여자가 왔다. 기다리며 나는 무심코 여자의 그림자를 밟고 있었다 버스가 왔다. 여자가 불룩한 그림자를 떼어놓고 버스에 탔다.
버스가 떠났다. 기다리며 나는 불룩한 그림자를 들여다보았다. 가득 찬 쓰레기봉투였다가, 말이 없었다.
버스가 지나갔다. 불룩한 그림자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닭뼈와 플라스틱 다시 들여다보았다. 닭뼈와 플라스틱을 머리에 얹고 소녀가 있었다. 담겨서, 말이 없었다.
기다리며 나는 불룩한 그림자를 내 몸에 붙였다. 잘 붙지 않았다. 말을 붙여보았다. 소녀는 물송이 나도 물송이 나는 내 몸에서 물송이와 닮은 것들을 상상했다. 계속 불룩한 그림자를 몸에 붙였다.
물빛으로 버스가 왔다. 거기 가나요? 물버스가 출렁였다. 나는 물버스에 탔다. 불룩한 그림자와 함께 거기 가나요?
소녀가 물었다. 나는 출렁였다. 거기가 어딘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거기가 어딘지 묻지 않았다. 어느 사물도 묻지 않았다.
계간 『창작과 비평』 2018년 여름호 발표
신영배 시인 / 세 번째 바람의 숲
나는 시를 쓰면 안 되는 사람일지 모른다.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숲에 갔을 때 나무들이 걷는 길을 따라 걸을 때 나는 왜 쓰는가 꽃을 들여다볼 때 첫 번째 바람이 오고 어쩌면 나는 시를 쓰면 안 되는 사람일지 모른다.
잠과 잠 잠과 식사 잠과 말 그리고 벽 시인들의 방이 숲에 있고 그 작은 숲에 갔을 때 길을 따라 향기가 날 때도 있고 안 날 때도 있고 나는 왜 쓰는가 새소리만 듣자고 다짐할 때 두 번째 바람이 오고 어쩌면 나는 시를 쓰면 안 되는 사람일지 모른다.
숲에 가서 말을 붙들고 아침엔 서 있고 저녁엔 앉아 있다. 비 오는 날엔 숲에 가지 않는다. 방에 빗소리가 가득하고 초록색. 잠도 스러지고 식사도 스러지고 벽 속에서 꺼낸 말도 스러지고 방이 숲이 되니까.
나는 왜 쓰는가. 누워만 있을 때 물에 잠긴 숲에 갔을 때 세 번째 바람이 오고 몸, 스러지는 초록색을 나는 본다.
월간 『현대시』 2018년 8월호 발표
신영배 시인 / 물악기
물방울 달린 악기를 만들기 위해 소년은 허벅지에 박힌 그것을 빼낸다. 등에 박힌 그것을 빼낸다. 뒤통수에 박힌 그것을 빼낸다.
물방울 달린 악기를 연주하기 위해 소년은 귓바퀴에 박힌 그것을 빼낸다. 목에 박힌 그것을 빼낸다.
탁 탁 탁 구석에 몰아넣는 소리를 빼낸다.
탁 탁 탁 주먹을 날리는 소리를 빼낸다.
탁 죽어라 하는 말을 빼낸다.
탁 탁 밟는 소리를 빼낸다.
탁 찍는 소리를 빼낸다.
그림자가 두 개로 뻗는 골목이었다. 아이들이 벽에 대고 호치키스를 박았다. 욕을 하고 발길질을 했다. 돌아서면 그만인 벽에서 아이들이 돌아섰다 사라지면 그만인 벽에서 소년은 사라졌다. 온몸에 그것이 박힌 채
문장 하나를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여자였다. 소년의 기억을 가진 여자였다. 지나갈 수밖에 없는 그 벽을 지나가며 여자는 ㄷ 자 철사 침을 주웠다. 매일 주웠다. 주워서 날랐다. 날라서 문장을 만들었다.
날랐다, 문장을 만들었다.
문장은 사라지는 악기, 계속 날랐다. 연주하기 위해
계간 『문학동네』 2018년 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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