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김민서 시인 / 반달의 시간

by 파스칼바이런 2019. 8. 1.

김민서 시인 / 반달의 시간

 

 

애지의 손톱 밑에

봉선화 꽃씨를 심어놓았지.

 

욱신욱신 생인손을 앓으면서

꽃의 인연 피어날 것 같아

불길해서 좋았지.

 

하늘수박넝쿨 향기의 울타리를 치면

바이러스처럼 번지는 꽃물.

 

하얀 눈썹 달 아래 앉아

손톱 끝으로 자라난 붉은 계절을 자른다.

 

붉은 반달을 지우며

흰 반달이 나란히 뜨는

무사한 이 시간들은 차라리

病이지.

 

지켜지지 않는 약속보다

더 힘이 센 미련으로

별다른 증세도 없이

수백 년의 잠복기만 지속되는

 

웹진 『시인광장』 2018년 10월호 발표

 

 


 

김민서 시인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졸업, 2008년 《시작》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