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자 시인 / 가을의 힘
모든 것들이 정상이었다. 너를 거기에 남겨두고 온 것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고 다시 만나러 갈 용기도 없으니 비행기로 치면 안전궤도에 진입했는데 자꾸 돌아보게 하는 이것은 가을이라는 계절이 당기는 힘, 우연히 만난 행성 하나를 몇 광년 거리에서 오래 바라보게 하는 일이다.
낙엽이 지는 즐거운 오후의 한 때가 그늘진 한 평의 시간을 끌어안고 가을 서막 한 장을 펼치고 있다.
우체국에서 가면 쓰지 못한 엽서 한 장과 조각난 추억의 한 면을 맞추지 못해 돌아서 오는 어느 가을날, 는개비 내리고 하늘에는 내가 타야 할 비행기 한 대가 낮게 날며 가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웹진 『시인광장』 2018년 10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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