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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고경자 시인 / 가을의 힘

by 파스칼바이런 2019. 8. 4.

고경자 시인 / 가을의 힘

 

 

      모든 것들이 정상이었다.

      너를 거기에 남겨두고 온 것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고

      다시 만나러 갈 용기도 없으니

      비행기로 치면 안전궤도에 진입했는데

      자꾸 돌아보게 하는 이것은

      가을이라는 계절이 당기는 힘,

      우연히 만난 행성 하나를

      몇 광년 거리에서 오래 바라보게 하는 일이다.

       

      낙엽이 지는 즐거운 오후의 한 때가

      그늘진 한 평의 시간을 끌어안고

      가을 서막 한 장을 펼치고 있다.

       

      우체국에서 가면

      쓰지 못한 엽서 한 장과

      조각난 추억의 한 면을 맞추지 못해

      돌아서 오는 어느 가을날,

      는개비 내리고 하늘에는

      내가 타야 할 비행기 한 대가 낮게 날며

      가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웹진 『시인광장』 2018년 10월호 발표

 

 


 

고경자 시인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대학원 졸업. 2011년 《시와사람》 겨울호로 등단.  시집으로 『하이에나의 식사법』, 『고독한 뒷걸음』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