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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규 시인 / 사과밭엔 가지 않겠어
슬픈 사랑의 代行이여, 서로 간절해 있으면서도 몸을 내밀 수 없는 비극을 사과꽃 필 때 사과나무 밭으로 가면 볼 수가 있지. 그게 사과의 몸이야 벌들이 떼지어 날아다니면서 사랑의 가루받이를 하는 걸 볼 수가 있지. 벌들이 사과의 사랑을 떼지어 약탈하고 있지. 이제 사과나무 밭에는 가지 않겠어. 잔인해, 비극의 몸은 그래서 맛이 나겠지만 그래서 싱겁지 않겠지만 비극의 풍요를 보는 게 무서워, 당신도 그동안 약탈당한 사랑의 결실을 사랑해 오셨겠지. 껍질도 벗기지 않고 우적거리셨겠지. 단순한 살이 아니니까 우여곡절의 살이니까 맛이 있었겠지. 처음부터 충만이었던 사랑은 싱겁지. 그런 결실을 먹어본 사람은 알지 싱겁지. 그래도 사과꽃 필 때 사과밭에는 가지 않겠어. 잔인해, 겁탈당한 결실이 맛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게 무서워, 그런 사과들을 上等品으로 비극의 아름다움을 上等品으로 팡팡 도장 찍는 세상이 무서워, 비극의 몸에 한번 맛들면 헤어나지 못하지. 싱거운 게 몸에 좋다니까! 금단이라니까! 나는 알아버렸어
웹진 『시인광장』 2012년 5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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