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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영광 시인 / 높새바람같이는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9. 20.

이영광 시인 / 높새바람같이는

 

 

나는 다시 넝마를 두르고 앉아 생각하네

당신과 함께 있으면, 내가 좋아지던 시절이 있었네

 

내겐 지금 높새바람같이는 잘 걷지 못하는 몸이 하나 있고,

높새바람같이는 살아지지 않는 마음이 하나 있고

문질러도 피 흐르지 않는 생이 하나 있네

 

이것은 재가 되어가는 파국의 용사들

여전히 전장에 버려진 짐승 같은 진심들

당신은 끝내 치유되지 않고

내 안에서 꼿꼿이 죽어가지만,

 

나는 다시 넝마를 두르고 앉아 생각하네

당신과 함께라면 내가, 자꾸 내가 좋아지던 시절이 있었네

 

시집 『아픈 천국』(창비, 2010) 중에서

 

 


 

 

이영광 시인 / 그늘 속의 탬버린

 

 

  지금은 그늘이 널 갖고 있다

  그러니까 넌 빛이야

  빛날 수 없는 빛

  견디기는 했지만 스스로를 사랑한 적 없는 독신

  너는 예쁘지 아니, 슬프지

  탬버린이 울 때까지 탬버린은 그치지 않고

  여전히, 검은 꺼진 눈을 뜨고 있는

  흑백텔레비전

  텔레비전

  그늘은 결국 인간관계지

  이것에 걸리기 위해 애썼다

  너는 절대로 잊을 수 없다

  사랑한다면 이렇게 오래 같이 살까?

  넌 함부로 죽었고

  나는 눈물이 흐른다

  화양연화 화양연화 화냥년아

  너는 네가 괴롭다

  금방이라도 그쳐버릴 것처럼

  탬버린은 영원히 짤랑거린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사라져버릴 것 같은 사람

  사라졌는데도

  사라져버릴 것 같은 사람

 

시집 『아픈 천국』(창비, 2010) 중에서

 

 


 

이영광 시인

1967년 경북 의성에서 출생. 고려대 영문과 및 同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 1998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 〈빙폭〉 외 9편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 직선 위에서 떨다』(창비, 2003)와 『그늘과 사귀다』(랜덤하우스, 2007)와 『아픈 천국』(창비, 2010)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