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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구순희 시인 / 시계 소리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9. 20.

구순희 시인 / 시계 소리

 

 

  세상 모르게 자다가도

  일순 잠을 깨면 저것 때문에

 

  죄없는 귀를 잡아당겨서

  그쳐라, 그쳐라 해도 말을 듣지 않아서

  살갗에 소름 돋도록 참다가 벌떡 일어나면

 

  비등점으로 끓는 속 내다 버려야지

  현관 밖에다 내놓고는

  저것도 한밤중에 비 맞으면 춥겠지

  안에 들여 놓아도 여전히 낙숫물 소리

 

  똑똑똑, 눈먼 시간이 짚어 가는 지팡이 소리

  지워지지 않았다

 

  지상에서 지워지는 게

  어디 있다고

  아무리 박박 문질러 봐라

  상처 자국, 딱정이가 지워지는가

  제때에 오지 않는 신발끼리

  계속 서로의 귀나 잡아당기면서

  그래,

  함께 살자

 

시집  『내려놓지마』(시산맥, 2011) 중에서

 

 


 

 

구순희 시인 / 주머니의 집

 

 

  지퍼 하나로 열리고 닫히는 집이 있습니다

 

  늘 비어 있기만 하는 주머니에

  변함없이 죄 많은 손만 집어넣습니다

 

  손끝에 달린 전등으로

  삶의 막간까지 비춰 보지만

  더듬이는 그만 길을 잃습니다

 

  빈집엔 푸석한 먼지가 주인입니다

 

  행여나 지푸라기라도 건질까

  헛수고한 손을 빼내 거풍시킵니다

 

  지상엔 주머니보다

  큰 집들이 왔다갔다합니다

 

  사들인 집이 몇 채 집안 가득 찹니다

  밖으로 나갈 땐 집을 통째로 들고 다닙니다

  색색의 집은 카멜레온입니다

  요즘엔 부쩍 가방만 사들입니다

  모두 눈물 주머니에다

  상처난 지퍼가 달렸습니다

 

  지갑에서부터 핸드백까지

  생은 지퍼 하나로 열리고 닫힐 뿐입니다

 

시집  『내려놓지마』(시산맥, 2011) 중에서

 

 


 

구순희 시인

경남 양산에서 출생. 《현대시학》  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그대 내게로 와서』, 『내 안의 가장 큰 적』, 『수탉에게 묻고 싶다』. 『누군가를 만날 것 같다』, 『군사 우편』, 『내려놓지마』가 있음. 2000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개인 창작집 발간 지원금 수혜. 2011년 서울문화재단 문학창작활성화 기금 수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