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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푸른 시인 / 앨리스
긴 머리칼을 가진 나를 바람결에 두지 말아요 메두사의 갈라진 혓바닥처럼 숨어있는 당신이 누설될지 모르니까요 머리칼 속으로 당신의 다섯 손가락이 세례를 받듯 순해져서 흘러내려요 목덜미 뒤로 들어선 푸른 숲엔 비늘이 날리는 그늘이 가득해요 풍향계를 따라 흔들리는 당신의 얼굴은 지나온 흔적이 없네요 머리칼 속으로 바람이 들어차요 부풀어 오르다 흩어지는 머리칼은 한 올 한 올 심장을 가졌어요 감겼던 아흔 아홉, 밤의 숨을 한꺼번에 토해내고 있어요 일렁이는 바람을 불러들이는 표정은 아직 열리지 않은 상자예요 고막이 없는 소용돌이의 중심이죠 고요와 비명이 긴 목을 꼬며 토네이도처럼 솟구쳐 올라요
곤두서는 머리칼이 면도날처럼 당신의 뒷모습을 얇게 가르고 있어요 수많은 칼금이 지나간 당신의 뒷모습은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낯선 풍경이에요 바람만이 무성한 비밀을 폭식하고 있어요 붉게 충혈된 귓불은 백치처럼, 아직도 뜨거워요
계간 『시와 경계』 2012년 여름호 발표
정푸른 시인 / 사칙연산
폭풍우 치는 밤엔 서둘러 나를 빼거나 더하지 말아요 당신의 허무를 수선하는 아름다운 기호들이 부서져 버릴지도 몰라요 폭우에 젖은 오답은 당신 머리를 흔드는 번개의 아류, 난파선의 호루라기처럼 당신은 간절해요 당신의 건조한 뇌를 흔들며 나는 끝없이 길어지는 π예요 당신 머리에 꽂힌 섬광은 무한대로 연결된 GPS죠 암산은 꿈의 뒷면에서 힌트를 얻은 포스트잇, 당신의 머리에서 펄럭이며 나는 먼 미래로 다시 태어나죠
천둥소리가 생크림으로 녹아있는 밤엔 나를 곱하거나 나누어 주세요 벌거벗은 생의 속살을 감춰줄 거예요 아무도 계산할 수 없는 광활한 주파수를 내 안에 증폭해 주세요 뒤섞여 달콤해지는 연산이 당신의 지평선을 토네이도처럼 휩쓸 거예요
그 곳에서 우리 다시 낯설게 만나요 빼고 더하고 곱해지고 나눠지는 몽환의 시간 속에서 당신 머리를 풍만한 실루엣에 묻었던 이항(移項)의 절묘한 그, 포즈로
월간 『현대시학』 2012년 7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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