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용국 시인 / 그맘때, 물의 기억
눈동자 속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었고 물 밖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었다.
나무들은 그저 서 있었지 그게 왜 그렇게 슬펐을까. 때로는 마음도 개발해야 한다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너무 무서워서 나무들은 그저 서 있었는지도
바람이 불었고 물결이 조금 일렁거렸다 빛과 빛 사이에서 캄캄하게 구겨진 목소리들이 떠다녔다 바로 이 때다 바깥으로 손을 내밀어야 한다
만나는 풍경과 헤어지는 풍경 사이로 이파리들이 떨어졌다 가볍게 흔들리며 물 속으로 눈동자가 번져갔다 눈동자 속으로 물이 차올랐다
눈동자 속을 걸어가는 물의 끝까지 물 밖을 걸어가는 눈동자의 끝까지 벽 없는 마음은 얼마나 공포 가득한지
물에 비친 나무들에게도 눈이 있었다. 자기 등 뒤의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계간 『파란』 2016년 겨울호 발표
한용국 시인 / 앵두맛
함께 걷던 사람이 나무를 가리키며 앵두군요라고 말했다.
붉고 동그란 열매들이 먼 나라의 언어 같았다. 열매 속은 잉잉거리는 소리들로 가득했다.
유월이군요. 이상기후가 계속되지만 여전히 앵두는 익어가는군요.
앵두 몇 알을 입에 넣었다. 어디서부터 걸어왔는지 어디로 걸어 가는지 알 수 없어졌다.
이런 게 앵두 맛이군요. 고개를 돌렸는데 앵두 나무도 없고 함께 걷던 사람도 없었다.
계간 『파란』 2016년 겨울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함명춘 시인 / 박쥐 외 2편 (0) | 2019.05.14 |
|---|---|
| 구재기 시인 / 황홀한 군무(群舞) (0) | 2019.05.14 |
| 금시아 시인 / 죽은 사람을 나누어 가졌다 (0) | 2019.05.14 |
| 김개미 시인 / K의 근황 (0) | 2019.05.14 |
| 김경미 시인 / 밤의 프랑스어 수업 (0) | 2019.05.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