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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숙자 시인 / 캐릭터 대 캐릭터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23.

정숙자 시인 / 캐릭터 대 캐릭터

 

 

  다른 해변에 도착해버리고 만다

   하루는 물론 일 년, 1분, 일생까지도

 

   아무리 갈고 닦고 쌓으려 해도 시간은 봉인된 채 제 갈 곳으로만 저벅저벅 흐른다

   운명을 쥔 그 어깨 보고 나서는 출구 없는 광야가 가로놓여도 궁금한 것조차 없다

 

   성자들

   그들이

 

   집필하지 않은 이유가 어렴풋 드러난다

   * *

   까도-까도… 알맹이가 없다고 껍질뿐이라고들 투덜대지만

   洋, 파!

 

그 행성의 원주율과 깨끗한 위도가 요즈막엔 얼마나 든든한지 고마운지. 울퉁불퉁하지 않고 글썽글썽하지도 않고 지구를 쏙 뺀 둥긂과 흙색의 겉껍질과 칼날 없는 칼자루 빼어들고 햇빛 수호하는 이파리들과

   * *

   파도-파도… 흙뿐이라고 대지를 탓한 적 있었던가?

 

지층, 누가 감히 그에게 까도-까도… 껍질이라고 ‘속았다’고 힐난할 수 있을 것인가. 두 겹을 난도질해도 다시 한 겹 웃어주는 그 깊은 동심원이 곧 우리가 한세월 파종하고 가꾸고 기다려온 얼굴 아니었던가

 

   너무 빠르거나 흐려지는 시계 아래서

   떠밀리는 낙엽과 파도

   쉬어갈 곳 못 찾은 바람소리 횡야설수야설 배회하는 밤

 

계간『시산맥』 2010년 봄호 발표

 

 


 

정숙자 시인

1952년 전북 김제에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을 통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감성채집기』, 『정읍사의 달밤처럼』, 『열매보다 강한 잎』, 『뿌리 깊은 달』,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과  산문집 『밝은음자리표』, 『행복음자리표』가 있음. . 현재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