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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성욱 시인 / 목련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27.

정성욱 시인 / 목련

 

 

  그해 목련 한 잎 툭하고 지자

  세상없는 부처를 찾는다고

  핑계 없는 무덤하나 만들어서

  시자스님은 산을 결국 떠났다

 

  새똥이 머리 위에 버짐처럼 앉은 열한 살

  “스님 되게 해주세요.”

  어미 손에 이끌려 온지 스무 해 하고도 한 해

  재워주고 입혀주었더니

  그만, 목련 한 잎 툭지자 몰래 떠나버린 것이다

 

  발우 앞에선 적묵(寂黙)이라는데

  열불 끓는 큰스님 끝내 할(喝)을 토해 내었다

 “저놈이 부처 찾는다고 어찌 제 마음속에 있는 부처는 못보고 저리 홀라당 가버린 겨“

  산마루에 올라 흔적 없는 시자의 뒷모습 멀찍이 바라보다

  끝내 목련 한 잎 손에 쥐고 혀를 껄껄 찬다

  “그래그래 아귀 득실거리는 저자거리 네놈이 얼마나 버텨내는지

  하마 내년 목련 잎이 피는 날은 부처님 불알이라도 잡고 돌아오겠지.”

  큰스님 못내 아쉬운 듯 눈시울을 붉힌다.

 

  그놈의 목련은

  봄바람에 왜 져서

  젊은 시자스님의 마음을

  저리도 울렁이게 했는지

  차마 눈 질금 감아버렸다.

 

 


 

 

불가에서 오랜 세월을 살았다. 아니 버티면서 살았다는 게 옳다. 큰스님과 시자는 속세로 치면 아버지와 아들이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행자를 제자로 받아들이는 큰스님의 마음은 아들을 얻은 것과 같다. 그런 행자를 꾸짖고 가르치면서 평생 자기처럼 수행자로 살기를 바라는 것이 은사의 마음이다

 

오래전부터 서정이 담겨있지 않은 시는 시가 아니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럼, 서정이란 무엇인가. 읽고 아련한 여운이 남아도는 것 그게 바로 서정이다. 시가 너무 작위적으로 흘러가는 현대시를 보면서 나는 적어도 그런 시를 쓰고 싶지는 않았다.

 

불가에서 오랜 세월을 살았다. 아니 버티면서 살았다는 게 옳다. 큰스님과 시자는 속세로 치면 아버지와 아들이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행자를 제자로 받아들이는 큰스님의 마음은 아들을 얻은 것과 같다. 그런 행자를 꾸짖고 가르치면서 평생 자기처럼 수행자로 살기를 바라는 것이 은사의 마음이다.

 

그러나 젊은 행자는 그렇지 않다. 갖은 속세의 때와 먼지 그리고 애락(愛樂)을 묻히고 들어왔기 때문에 여간해서 불가의 법도(法道)를 받아들이고 지키기란 참으로 힘들다. 그러다가 봄바람이라도 불면 산을 내려가고 싶어 한다. 그래서 세속인과 출가인은 둘이 아닌 하나이며 수행과 파계 또한 둘이 아니라 하나인 것이다.

 

이 시는 산속에 있지 않으면 쓸 수 없는 것임을 감히 말한다. 평생 수행자로 살기를 바라는 큰스님과 늘 산속에 있으면서 세속을 그리워하는 젊은 스님의 마음을 읽는 것 그 자체가 바로 시이기 때문이다. 부처는 세상에 있고 없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부처는 정작 바로 내 안에 있다. 살아오면서 그걸 요즘 나는 절실히 느낀다. 나무아미타불이다.

 

 


 

정성욱 시인

무크지 《지평》, 《전망》 등을 통해 시 활동시작. 《부산일보》 신춘문예와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겨울남도행』,  『아주 오래된 연애』 등과 그밖의 저서로는 『바닷가의 절 한 채』, 『스님의 생각』 등 다수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