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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김영 시인 / 실업주의보
검은 콩이 잠시 잠들어 있다
서버에 덩굴손을 뻗어 이슬의 암호를 꾹꾹 누르는 저녁
덩굴손을 탑재할까? 아니면 그냥 콩으로 남아있을까? 산란하였지만 콩은 여전한 콩이었어. 향일성에 대한 토론으로 밤을 지낸 나물 콩은 나물 콩, 덩굴손으로 제 목을 감은 쥐방울덩굴은 쥐방울덩굴이었지. 해바라기 근성에 대해 열변을 토하다가 얼굴이 깔때기처럼 진화한 해바라기, 자유의지를 부르짖던 박주가리는 웬일로 흔적 없이 사라졌어. 이쯤에서 콩들은 몹시 서성거렸을 거야
아침마다 건널목 앞에서 수많은 발자국들은 일단 정지.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은 생존이야 이슬이 길에서 사라지기 전까지
벗어던진 신발의 몰골로 콩깍지를 열어보는 저녁
지상의 모든 콩들은 밤새 이슬에 젖는 꿈을 꾸지 그리고는 하루치의 동력을 얻지,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벼랑이야
덩굴손을 올려볼까 다른 콩이 되어볼까
계간 『시향』 2018년 봄호 발표
김제김영 시인 / 어떤 프로필
그의 자자한 전력은 꼬리에 있었다
그는 누군가의 꼬리를 견본삼아 바다와 강을 가리지 않고 뛰어 다녔다 꼬리를 위해 취미생활을 하고, 꼬리를 빛내 줄 머리만 만났다 남루를 감추기 위해 철학자의 이름도 두엇 쯤 암기해뒀다
명상과 웃음이 꼬리 쪽으로 모아졌다 꼬리를 돌려보고 늘어뜨려 보기도 하면서 혼자 물어뜯는 밤이 자주 깊었다
파도를 닮은 근육과 뼈에 대한 이력은 생략된 채 꼬리만 적어나갔다
그가 유영하는 세상은 끝내 그를 모른 채
발걸음 옮길 때마다 한 줄 씩 늘어나는 힘
감성과 타성이 펄떡거릴 때마다 실없는 꼬리만 자꾸만 길어졌다
그의 명함에 늘어선 행간이 명함 밖으로까지 흘러내렸다
계간 『한국문학세상』 2018년 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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