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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현형 시인 / 이브레아까지는 너무 멀다*
너는 창백하지 않아 소나무 유령아 가파름을 넘는 힘은 어디서 오나 금관에서 흘러오는 목소리를 멀리서 들으면 아득해진다 야간 기차를 탄 기분으로
밤의 공기가 달착지근해진다 창문 가까이 트럼펫 가까이 하숙하며 지내던 그때 햇볕이 사라진 골목에 자주 사로잡혔다
빛과 어둠 사이 은밀한 시샘으로 반대편의 취향과 언어로 끝없이 구애한 적 있다 피아노를 치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던 손가락을 편지 쓰는 일에만 바친 적 있다
한 자루에 다 담을 수 없는 솔방울 향기를 탐닉한 사냥꾼은 시간에 빠진 사랑이었을 것이다 발바닥 가운데까지 심장이 박혀 있던 나이
터키 원석 세공사나 색감 좋은 원단의 이름을 부르듯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으로 기도하던 저녁과 함께 너와 함께 전력으로 걸어왔다, 창백한 소나무 유령아 온종일 낙숫물을 받았던 네 손바닥에서 녹내가 난다
너는 언젠가 날아다닌 적이 있을 거야 증표처럼 남아 있는 수많은 잔 날개들 수많은 초록 바늘들, 가파름을 넘는 힘은 어디서 오나 눈이 내리면 밖을 내다보는 것을 좋아하던 우리들의 습관
* W. G. 제발트
계간 『포에트리 슬램』 2017년 가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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