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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수현 시인 / 점경(點景)들

by 파스칼바이런 2019. 11. 25.

박수현 시인 / 점경(點景)들

 

 

2014년 4월 28일 목동 W아파트. 부러진 목련 가지. 짓이겨진 목련꽃잎 위로 엎질러진 선지 한 사발. 11층과 12층 층간에서 몸을 날린 M고교 2학년생. 카메라 플래쉬. 엠블런스 사이렌 소리. 귓속말을 주고받는 사람들. 저녁 일곱 시 뉴스 자막으로 요약된 한 줄의 점경(點景)

 

2015년 11월 15일 J일보 사회면 2단 기사. 충북 보은면 은계리 한 농가에서 발견된 사체 두 구. 치매 앓는 아내의 목을 조른 후 그라목손을 마신 70대 L할아버지. 밀쳐진 이불 옆엔 시반(屍班)처럼 얼룩진 가족사진. 말라빠진 밥그릇과 엎어진 김치보시기. 윗목에는 싹이 노랗게 튼 무 반 포대와 썩은 호박 한 덩이.

 

2015년 12월 20일. LPG 가스통을 자전거에 싣고 무작정 상가로 돌진한 일용 잡역부 40대 남자 P씨. 박살난 전면 유리창 파편에 행인 4명이 중경상 입음. 집 나간 제 에미를 찾는 5살 난 딸애를 보육원에 두고 온 저녁, 길 건너편 H병원 응급실로 후송됐으나 이틀 뒤 패혈증으로 사망.

 

2016년 8월 11일. 경기도 부천시 생태공원 여자화장실. 중 3 여학생이 갓 낳은 영아를 검은색 나이키 점퍼에 싸서 유기. 피 먹은 생리대 위에 구겨진 영아의 직접사인은 청색증. 근처 PC방에서 게임을 하다 체포된 뉴욕 양키스 야구모의 흐린 소녀.

 

2016년 12월 14일. 서울 서교동 H아파트 지하 1층 사우나 탈의실. 남루한 항공점퍼를 입은 60대 남자가 갑자기 쓰러짐. 니코틴 낀 이빨을 덜덜 떨며 배가 고프다고 호소했으나 한 그릇 밥 대신 119 구조대가 출동. (종업원 S씨는 추위를 피해 사우나에 몰래 들어온 것 같다고 증언).) 병원으로 호송 중 사망. 신분증 및 연고자를 추정할 소지품은 발견되지 않음.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공원묘지 무연고 추모의 집 철제 선반에 안치된 유골함.

 

계간 『포엠 포엠』 2017년 가을호 발표

 

 


 

박수현 시인

1953년 경북 청도에서 출생. 경북대학교 사범대 영어과 졸업. 2003년 《시안》으로 등단. 시집으로 『운문호 붕어찜』과 『복사뼈를 만지다』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