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근대)

김광균 시인 / 가신 누님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4. 28.

김광균 시인 / 가신 누님

 

 

  누님은 가셨나요 바다를 건너

  뛰-뛰-하는 큰 배 타고 머나먼 나라로

  사랑하는 나를 두고 누님은 가셨나요

  쓸쓸한 가을비 부실부실 오던 밤

  희미한 촉불아래 고개를 베고

  재미있는 옛 이야기 번갈아 하는

  내 누님은 가셨나요 바다를 건너

  달 밝은 밤 滿月臺(만월대)의 우거진 풀 속에서

  베짱이의 우는 소리 들려오고요

  옛 비인 대터의 盤石(반석) 우에는

  누님 찾는 내 노래가 슬프기도 합니다

 

  멀고먼 그 나라의 그리운 내 누님

  누님의 떠나던 날 꽂아놓은 들국화는 至今(지금)은 시들어 볼 것 없어 도

  찬 서리는 如前(여전)히 때를 따라서

  오늘밤도 잠자코 나려옵니다.

 

1926년 12얼 14일 《중외일보》 신춘문예에 13세의 나이로 당선

 

 


 

 

김광균 시인 / 설야(雪夜)

 

 

  어느 먼ㅡ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췬 양 흰 눈이 내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먼ㅡ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衣裳)을 하고

  흰 눈은 내려 내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  

 

《조선일보》 1938년 1월 8일 신춘문예 당선시

 

 


 

김광균 [金光均, 1914.1.19 ~ 1993.11.23]  시인

1914년 개성에서 출생. 호는 우두(雨杜). 개성상업학교 졸업. 1926년 《중외일보》에 〈가는 누님〉을 발표하며 등단.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雪夜(설야)〉 당선.  1939년 『와사등』을  시작으로 『기항지』, 『황혼가』, 『추풍귀우』, 『임진화』 등의 시집 출간. '자오선' 동인으로 활동. 1989년 지용문학상 수상. 1993년 부암동 자택에서 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