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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유치환 시인 / 예루살렘의 닭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4. 26.

유치환 시인 / 예루살렘의 닭

 

 

오늘도 너는 嘲笑(조소)와 모멸로서 침 뱉고 뺨치며 위선이 (선)을 능욕하는 그 부정 앞에 오히려 외면하며 회피하므로서 악에 가담하지 않았는가.

 

새벽이면 새벽마다 먼 예루살렘 성에 닭은 제 울음을 기일게 홰쳐 울고 내 또한 무력한 그와 나의 卑屈(비굴)에 대하여 죽을 상히 사모치는 분함과 죄스럼과 그 자책에 눈물로서 베개 적시우노니.

 

시집 『예루살렘의 닭』(산호장, 1953) 중에서

 

 


 

 

유치환 시인 / 曠野에 와서

 

 

興安嶺(흥안령) 가까운 北邊(북변)의

曠漠(광막)한 벌판 끝에 와서

죽어도 뉘우치지 않으려는 마음 위에

오늘은 이레째 暗愁(암수)의 비 내리고

 

내 망난이에 본 받아

(화)툿장을 뒤지고

담배를 눌러 꺼도

마음은 속으로 끝없이 울리노니

아이 이는 다시 나를 過失(과실)함이러뇨

 

이미 온갖을 저버리고

사람도 나도 접어주지 않으려는 이 自虐(자학)의 길에

내 열번 敗亡(패망)의 人生(인생)을 버려도 좋으련만

아아 이 悔悟(회오)의 앓임을 어디메 號泣(호읍)할 곳 없어

 

말없이 자리를 일어나와 문을 열고 서면

나의 脫走(탈주)할 思念(사념)의 하늘도 보이지 않고

停車場(정거장)도 二百里(이백리) 밖

暗澹(암담)한 진창에 갇힌 鐵壁(철벽) 같은 絶望(절망)의 曠野(광야)!

 

시집 『생명의 서』(행문사, 1947) 중에서

 


 

유치환[柳致環, 1908. 7.14 ~ 1967. 2.13] 시인

1908년 경남 충무에서 출생. 동래보고 졸업. 연희전문에서 수학. 《문예월간》 1931년 12월호에 <정적>을 발표하며 등단. 시집으로 『청마시초』(1939), 『생명의 서』(1947), 『울릉도』(1948), 『보병과  더불어』(1951), 『예루살렘의 닭』(1953),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1960),『미루나무와 남풍』(1964) 등이 있음. 장응두. 최상규  등과  동인지 『생리』를 발행. 청년문학가협회 시인상. 아세아자유문학상. 예술원상 수상. 1967년 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