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균 시인 / 가신 누님
누님은 가셨나요 바다를 건너 뛰-뛰-하는 큰 배 타고 머나먼 나라로 사랑하는 나를 두고 누님은 가셨나요 쓸쓸한 가을비 부실부실 오던 밤 희미한 촉불아래 고개를 베고 재미있는 옛 이야기 번갈아 하는 내 누님은 가셨나요 바다를 건너 달 밝은 밤 滿月臺(만월대)의 우거진 풀 속에서 베짱이의 우는 소리 들려오고요 옛 비인 대터의 盤石(반석) 우에는 누님 찾는 내 노래가 슬프기도 합니다
멀고먼 그 나라의 그리운 내 누님 누님의 떠나던 날 꽂아놓은 들국화는 至今(지금)은 시들어 볼 것 없어 도 찬 서리는 如前(여전)히 때를 따라서 오늘밤도 잠자코 나려옵니다.
1926년 12얼 14일 《중외일보》 신춘문예에 13세의 나이로 당선
김광균 시인 / 설야(雪夜)
어느 먼ㅡ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췬 양 흰 눈이 내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먼ㅡ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衣裳)을 하고 흰 눈은 내려 내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
《조선일보》 1938년 1월 8일 신춘문예 당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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