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목월 시인 / 길처럼
머언 산(山) 구비구비 돌아갔기로 산 구비마다 구비마다 절로 슬픔은 일어……
뵈일 듯 말 듯한 산길 산울림 멀리 울려 나가다 산울림 홀로 돌아 나가다 …… 어쩐지 어쩐지 울음이 돌고
생각처럼 그리움처럼…… 길은 실낱 같다.
청록집, 을유문화사, 1946
박목월 시인 / 그것은 연륜이다
어릴 적 하찮은 사랑이나 가슴에 박여서 자랐다
질 곱은 나무에는 자주빛 연륜이 몇 차례나 몇 차례나 감기었다
새벽 꿈이나 달 그림자처럼 젊음과 보람이 멀리 간 뒤 …… 나는 자라서 늙었다
마치 세월도 사랑도 그것은 애달픈 연륜이다
월간 『文章(문장)』 1939년 9월호 추천
박목월 시인 / 가을 어스름
사늘한 그늘 한나절 저물을 무렵에 머언산 오리木 산ㅅ길로 살살살 날리는 늦가을 어스름
숱한 콩밭머리마다 가을 바람은 타고 靑石 돌담 가으로 구구구 저녁 비둘기
김장을 뽑는 날은 저녁 밥이 늦었다 가느른 가느른 들길에 머언 흰 치맛자락 살어질듯 질듯 다시 뵈이고 구구구 구구구 저녁 비둘기
박목월 시인 / 연륜(年輪)
슬픔의 씨를 뿌려놓고 가버린 가시내는 영영 오지를 않고…… 한 해 한 해 해가 저물어 質고운 나무에는 가느른 가느른 핏빛 年輪이 감기었다. (가시내사 가시내사 가시내사)
蒼白한 少年은 늘 말이 없이, 샛까아만 눈만 초롱초롱 크고……. 귀에 쟁쟁쟁 울리듯 참아 못잊는 가느른 가느른 웃녘 사투리. 年輪은 더욱 샛빩에졌다. (가시내사 가시내사 가시내사)
이제 少年은 자렸다. 구비구비 흐르는 은하수에 꿈도 슬픔도 세월도 흘렀건만…… 먼 수풀 質고운 나무에는 상기 가느른 가느른 피빛 年輪이 감기어 나간다……. (가시내사 가시내사 가시내사)
월간 『文章(문장)』 1939년 12월호 추천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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