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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현승 시인 /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5. 1.

김현승 시인 /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

 

 

아침 해의 祝福과 사랑을 받지 못하는 크고 작은 琉璃窓들이

瞬間의 榮光답게 最後의 燦爛답게 빛이 어리었음은

저기 저 찬 하늘과 추운 地平線 위에 붉은 해가 피를 뿌리고 있습니다.

날이 저물어 그들의 恍惚한 심사가 멀리 바라보이는廣闊한 하늘과 大地와 

더불어 黃昏의 默想을 모으는 곳에서

해는 날마다 그의 마지막 情熱만을 세상세 붓는다 합니다.

여보세요. 저렇게 붉은 情熱만은 아마 식을 날이 없겠지요.

아니 우랄山 골짜기에 쏟아뜨린 젊은 사내들의 피를 모으면 저만 할까?

 

그렇지요. 東方으로 귀양간 젊은이들의 情熱의 會合이 있는 날

아! 저 하늘을 바라보세요.

黃金窓을 단 검은 汽車가

어둡고 두려운 밤을 피하여 黎明의 나라로 화살같이 달아납니다.

그늘진 山을 넘어와 曠野의 詩人 - 검은 까마귀가 城邑을 지나간 후

어두움이 大地에 스며들기 전에

列車는 安全地帶의 輝煌한 메트로 폴리스를 향하여

黑暗이 切迫한 北部의 雪原을 脫出한다 하였읍니다.

그러면 여보! 이날 저녁에도 또한 밤을 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적막한 몇가지 일을 남기고 해는 졌읍니다그려!

참새는 素朴한 깃을 찾고,

산 속의 토끼는 털을 뽑아 둥지에 찬바람을 막고 있겠지요.

어찌 灰色의 포플러인들 五月의 茂盛을 回想하지 않겠습니까?

불려 가는 바람과 나려오는 서리에 한평생 늙어 버린 電信柱가

더욱 가늘고 뾰죽해질 때입니다.

저녁 配達夫가 돌아다닐 때입니다.

여보세요.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허다한 사람들에게

幸福한 時間을 프레센트하는 郵便物입니까?

 

해를 쫓아 버린 검은 狂風이 눈보라를 날리며 凱旋行進을 하고 있습니다 그려!

불빛 어린 窓마다 구슬피 흘러 나오는 悲戀의 頌歌를 듣습니까?

쓸쓸한 저녁이 이를 때 이 땅의 居住民이 부르는 遺傳의 노래입니다.

지금은 먼 이야기, 여기는 東方

그러나 우렁차고 빛나던 해가 西쪽으로 기울어지던 날

오직 한마디의 悲歌를 이 땅에 남기고 先人의 발자취가

어두움 속으로 永遠히 사라졌다 합니다.

그리하여 눈물과 한숨, 또한 내어버린 웃음 위에

漂浪의 歷史는 흐르는 세월과 함께 쓰여져 왔다 합니다.

 

그러면 여보, 이러한 이야기를 가진 당신들!

쓸쓸한 저녁이 올 때 窓밖에 안타까운 집시의 노래를 放送하기엔

ㅡ당신들의 情熱은 너무도 크지 않습니까?

漂浪의 歷史를 그대로 흘려 보내기엔

ㅡ당신들의 마음은 너무도 悲憤하지 않습니까?

너무도 오랫동안 차고 어두운 이 땅,

너무도 오랫동안 차고 어두운 이 땅,

울분의 덩어리가 數千 數百 强烈히 불타고 있었읍니다그려!

마침내 悲戀의 感情을 발끝까지 찍어 버리고

金붕어 같은 삶의 기나긴 페이지 위에 검은 먹칠을 하고

하고서, 强하고 튼튼한 歷史를 또다시 쌓아 올리고

캄캄하던 東方山 마루에 빛나는 해를 불쑥 올리려고.

밤의 險路를 千里나 萬里를 달려 나갈 젊은 당신들ㅡ

情緖를 가진 이, 일만 사람이 쓸쓸하다는 겨울 저녁이 올 때

구슬픈 저녁을 더더 裝飾하는 가냘픈 旋律 끝에 매어 달린 曲調와

당신의 작은 깃을 찾는 가엾은 마음일랑 작은 산새에게 내어 주고

線色 등잔 아래 붉은 會話를 그렇게 할 이웃에게 맡기고

여보! 당신들은 猛烈한 바람이 추운 거리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읍니까?

소름찬 당신들의 일을 하여야 하지 않겠읍니까?


동아일보, 1934. 3. 25

 

 


 

 

김현승 시인 / 어린 새벽은 우리를 찾아온다 합니다

 

 

새까만 하늘을 암만 쳐다보아야 어딘지 모르게 푸르렇더니

그러면 그렇지요, 그 우렁차고 광명한 아침의 선구자인 어린 새벽이

벌써 희미한 초롱불을 들고 사방을 밝혀 가면서

거친 산과 낮은 들을 걸어오고 있었습니다그려!

아마 동리에 수탉이 밤의 적막을 가늘게 찢을 때

잠자던 어느 골짜기를 떠나 분주히 나섰겠죠.

 

여보세요. 당신은 쓸쓸한 저녁이 올 때 얼마나 슬퍼하였습니까?

당신이 사랑하는 해가 거친 산정에서 붉은 피를 쏟고

감상 시인인 까마귀가 황혼의 비가를 구슬피 불러

답답한 어두움이 방방곡곡에 숨어들 때

당신은 끊어져 가는 날의 숨소리를 들으며 영원한 밤을 슬퍼하지 않았습니까?

그러기에 당신은 또한 절망을 사랑하기에 경솔하고,

감정을 달래기에 퍽도 이지가 둔하였다는 말이지요.

지구의 구석까지 들어찰 광명을 거느리고, 용감스러운 해는

어둡고 험준한 비탈과 절벽을 또다시 기어오르고 있다는 걸요.

이제 그 빛난 얼굴을 동방산(東方山) 마루에 눈이 부시도록 내어놓으면

모든 만물은 환호를 부르짖고

새로운 경륜을 이루어 나간다 합니다.

힘있고 새로운 역사가 광명한 그 아침에 쓰여진다 합니다!

 

저것 보아요. 어두운 밤을 지키고 있던 파수병정인 별들은 이제 쓸데 없고요.

그리고 당신이 작은 낙천가라고 부르는 고 얄미운 참새들이

어느새 해를 환영하겠다면서 어린 이슬들이 밤새도록 닦아놓은

빨랫줄 위에 아주 저렇게 줄지어 앉았겠죠.

평생 지껄여야 무슨 이야기가 저렇게도 많은지.

 

그러면 글쎄, 참새들은 지금

이른 아침 새벽 정찰 나온 구름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그려!

저걸 좀 보아요. 우렁하고 늠름한 기상을 가진 흰 구름들이 동방에서 일어나

오늘은 벌써 서부원정(西部遠征)의 새벽 정찰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나간 여름에 저 구름들이 황하 연안을 공격하였을 때

너무도 지나친 승리를 하였다고 합니다그려.

그러니 어찌, 감상 시인인 까마귀들만이 그냥 있을 수 있어야지요.

아마 황혼에 읊을 시재(詩材)를 얻기 위하여 지금 저렇게 산을 넘어

거칠고 쓸쓸한 광야로 나가는가 봐요.​

 

동편에선 언제나 가장 높은 체하는 험상궂은 산봉우리가

아직도 해를 가리우며 내어 놓지를 아니하는데

그 얌전성 없는 참새들은 못 기다리겠다고 반뜻한 줄을 흐트리고

그만 다들 날아가 버리겠지요.

그러나 그 차고 넘치는 햇발들이 사방으로 빠져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기에 어젯밤 당신을 보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밤을 뚫고 수천 수백리를 걸어나가면 광명한 아침의 선구자인 어린 새벽이

희미한 등불을 들고 또한 우리를 맞으러 온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동아일보》 1934년 5월25일 발표

 

 


 

김현승[金顯承,1913.2.28 ~ 1975.4.11]시인

1913년 평양에서 출생. 숭실전문학교 졸업.  장시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과  「어린 새벽은 우리를 찾아온다 합니다」를 스승 양주동의 소개로 1934년 5월 25일  《동아일보》 문화란에 발표하며 시문단에 데뷔. 첫시집 『김현승 詩抄』(1957) 이후 『옹호자의 노래』(1963), 『견고한 고독』(1968) , 『절대 고독』(1970), 『김현승시선집』(1974) 등의 시집과 평론집 『한국현대시해설』(1972) 등을 간행.

 전라남도문화상·서울시문화상 수상. 1975년 작고 후 시집 『마지막 지상에서』(1975) 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