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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박두진 시인 / 墓地頌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5. 2.

박두진 시인 / 묘지송(墓地頌)

 

 

  

  북망(北邙)이래도 금잔디 기름진데 동그란 무덤들 외롭지 않어이.  

 

  무덤 속 어둠에 하이얀 촉루(髑髏)가 빛나리. 향기로운 주검의ㅅ내도 풍기리.

 

  살아서 설던 주검 죽었으매 이내 안 서럽고,

  언제 무덤 속 화안히 비춰줄 그런 태양(太陽)만이 그리우리.

 

  금잔디 사이 할미꽃도 피었고, 삐이 삐이 배, 뱃쏭! 뱃쏭! 멧새들도 우는데,

  봄볕 포군한 무덤에 주검들이 누웠네.


청록집, 을유문화사, 1946

 

 


 

 

박두진 시인 / 향현(香峴)

 

 

아랫도리 다박솔 깔린 산 너머, 큰 산 그 너멋 산 안 보이어, 내 마음 둥둥 구름을 타다.

 

우뚝 솟은 산, 묵중히 엎드린 산, 골골이 장송(長松) 들어섰고, 머루 다래 넝쿨 바위 엉서리에 얽혔고, 샅샅이 떡갈나무 억새풀 우거진 데, 너구리, 여우, 사슴, 산토끼, 오소리, 도마뱀, 능구리 등 실로 무수한 짐승을 지니인,

 

산, 산, 산들! 누거만년(累巨萬年) 너희들 침묵이 흠뻑 지리함 직하매,  

 

산이여! 장차 너희 솟아난 봉우리에, 엎드린 마루에, 확 확 치밀어 오를 화염(火焰)을 내 기다려도 좋으랴?   

 

핏내를 잊은 여우 이리 등속이 사슴 토끼와 더불어, 싸릿순 칡순을 찾아 함께 즐거이 뛰는 날을 믿고 길이 기다려도 좋으랴?

 

월간 『문장』 제5호, 1939년 6월호 발표

 

 


 

박두진 [朴斗鎭, 1916.3.10 ~ 1998.9.16] 시인

1916년 경기도 안성에서 출생. 1939년 정지용의 추천으로 《문장》誌를 통해 등단. 박목월, 조지훈과 함께 3인 합동시집 『靑鹿集(청록집)』(을유문화사, 1946)을 간행한 뒤 첫 개인시집 『해』를 출간. 이후 『오도』, 『거미와 성좌』, 『인간밀림』, 『고산식물』, 『사도행전』, 『수석열전』, 『속 수석열전』, 『야생대』, 『포옹무한』, 『빙벽을 깬다』 등의 시집과 시론집 『시와 사랑』, 『한국현대시론』 등을 간행.

 3.1문화상 예술상, 인촌상, 지용문학상, 외솔문학상, 동북아기독문학상 등을 수상. 연세대에서 정년퇴임 후 단국대와 추계예대에서 후학 양성. 1998년에 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