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진 시인 / 묘지송(墓地頌)
북망(北邙)이래도 금잔디 기름진데 동그란 무덤들 외롭지 않어이.
무덤 속 어둠에 하이얀 촉루(髑髏)가 빛나리. 향기로운 주검의ㅅ내도 풍기리.
살아서 설던 주검 죽었으매 이내 안 서럽고, 언제 무덤 속 화안히 비춰줄 그런 태양(太陽)만이 그리우리.
금잔디 사이 할미꽃도 피었고, 삐이 삐이 배, 뱃쏭! 뱃쏭! 멧새들도 우는데, 봄볕 포군한 무덤에 주검들이 누웠네.
청록집, 을유문화사, 1946
박두진 시인 / 향현(香峴)
아랫도리 다박솔 깔린 산 너머, 큰 산 그 너멋 산 안 보이어, 내 마음 둥둥 구름을 타다.
우뚝 솟은 산, 묵중히 엎드린 산, 골골이 장송(長松) 들어섰고, 머루 다래 넝쿨 바위 엉서리에 얽혔고, 샅샅이 떡갈나무 억새풀 우거진 데, 너구리, 여우, 사슴, 산토끼, 오소리, 도마뱀, 능구리 등 실로 무수한 짐승을 지니인,
산, 산, 산들! 누거만년(累巨萬年) 너희들 침묵이 흠뻑 지리함 직하매,
산이여! 장차 너희 솟아난 봉우리에, 엎드린 마루에, 확 확 치밀어 오를 화염(火焰)을 내 기다려도 좋으랴?
핏내를 잊은 여우 이리 등속이 사슴 토끼와 더불어, 싸릿순 칡순을 찾아 함께 즐거이 뛰는 날을 믿고 길이 기다려도 좋으랴?
월간 『문장』 제5호, 1939년 6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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