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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소월 시인 / 浪人의 봄 외 7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5. 13.

김소월 시인 / 浪人의 봄

 

 

  휘둘니산을넘고,

  구비진물을건너,

  푸른플붉은꽃에,

  길것기시름[愁]이어,

 

  닙푸른시닥나무,

  쳘이른푸른버들,

  해벌서夕陽인데,

  불슷는바람이어,

 

  골작이니는煙氣,

  뫼틈에잠기는데,

  山모루도는손의,

  슬지는그림자여,

 

  山길가외론주막,

  어이그,쓸쓸한데,

  몬져든짐쟝사의,

  곤한말한소래여,

 

  지는해그림지니,

  오늘은어데까지,

  어둔뒤아모대나,

  가다가묵을네라,

 

  풀숩에물김뜨고,

  달빗에새놀내는,

  고흔봄夜半에도,

  내사람생각이어,

 

월간 『創造(창조)』 1920년 3월호(제5호) 발표

 

 


 

 

김소월 시인 / 나의 집

 

 

  들가에 떨어져 나가 앉은 메기슭의

  넓은 바다의 물가 뒤의,

  나는 지으리, 나의 집을,

  다시금 큰 길을 앞에다 두고,

  길로 지나가는 그 사람들은

  제가끔 떨어져서 혼자 가는 길.

  하이얀 여울턱에 날은 저물 때.

  나는 문(門)간에 서서 기다리리

  새벽 새가 울며 지새는 그늘로

  세상은 희게, 또는 고요하게,

  번쩍이며 오는 아침부터,

  지나가는 길손을 눈여겨보며,

  그대인가고, 그대인가고.

 

시집 『진달래꽃』(매문사, 1925) 중에서

 

 


 

 

김소월 시인 / 苦樂

 

 

무겁은짐 지고서 닷는사람은

崎嶇한 발뿌리만 보지말고서

때로는 고개드러 四方山川의

시언한 세상風景 바라보시오

 

먹이의 달고씀은 입에 딸니고

榮辱의 苦와 樂도 맘에딸녓소

보시오 해가저도 달이뜬다오

그믐밤 날굿거든 쉬어가시오

 

무겁은짐 지고서 닷는사람은

숨차다 고갯길을 탄치말고서

때로는 맘을눅여 坦坦大路의

이제도 잇슬것슬 생각하시오

 

便安이 괴롭음의 씨도되고요

쓰림은 즐겁음의 씨가됩니다

보시오 火田망정 갈고심그면

가을에 黃金이삭 수북달니오

 

칼날우헤 춤추는 人生이라고

물속에 몸을던진 몹쓸게집애

어찌면 그럴듯도 하긴하지만

그럿치 안은줄은 왜몰낫든고

 

칼날우에 춤추는 人生이라고

自己가 칼날우헤 춤을춘게지

그누가 밋친춤을 추라햇나요

얼마나 빗꼬이운 게집애든가

 

야말로 재고생을 제가사서는

잠을데 다시업서 엄남기지요

무겁은짐 지고서 닷는사람은

길가의 청풀밧테 쉬어가시오

 

무겁은짐 지고서 닷는사람은

崎嶇한 발뿌리만 보지말고서

때로는 春夏秋冬 四方山川의

뒤밧귀는 세상도 바라보시오

 

무겁다 이짐일낭 버슬겐가요

괴롭다 이길일낭 아니것겟나

무겁은짐 지고서 닷는사람은

보시오 시내우헤 물한방울을

 

한방울 물이라지 모여흐르면

흘러가서 바다의 물결됩니다

하눌로 올라가서 구름됩니다

다시금 땅에나려 비가됩니다

 

비되여 나린물이 모둥켜지면

山間엔 瀑布되어 水力電氣요

들에선 灌漑되어 萬鐘石이오

매말러 타는 땅엔 기름입니다

 

어엽분 꽃한가지 이울어갈제

밤에찬 이슬되여 축여도주고

외롭은 어느길손 창자조릴제

길가의 찬샘되여 눅궈도주오

 

시내의 여지업는 물한방울도

흐르는 그만뜻이 이러하거든

어느人生 하나이 저만저라고

崎嶇하다 이길을 타발켓나요

 

이짐이 무겁음에 뜻이잇고요

이짐이 괴로움에 뜻이잇다오

무겁은짐 지고서 닷는사람이

이세상 사람답은 사람이라오

 

월간 『三千里[삼천리]』 1934년 11월호(56호) 발표

 

 


 

 

김소월 시인 / 往十里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여드레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朔望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 가도 往十里 비가 오네.  

 

  웬걸, 저 새야

  울려거든

  왕십리 건너가서 울어나 다고,

  비 맞아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天安에 삼거리 실버들도

  촉촉히 젖어서 늘어졌다데.

  비가 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구름도 산마루에 걸려서 운다.

 

시집 『진달래꽃』(매문사, 1925) 중에서

 

 


 

 

김소월 시인 / 招魂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

  虛空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

 

  心中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붉은 해는 西山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음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음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빗겨 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시집 『진달래꽃』(매문사, 1925) 중에서

 

 


 

 

김소월 시인 / 접동새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津頭江)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 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 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 보랴

  오오 불설워*

  시샘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는 오랍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夜三更)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산 저산 옮아 가며 슬피 웁니다.

 

* 불설워 : 평안도 사투리로 '몹시 서러워'의 뜻.

 

시집 『진달래꽃』(매문사, 1925) 중에서

 

 


 

 

김소월 시인 /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면

 

 

  나는 꿈꾸었노라, 동무들과 내가 가즈런히

  벌가*의 하루 일을 다 마치고

  석양에 마을로 돌아오는 꿈을,

  즐거이, 꿈 가운데.

 

  그러나 집 잃은 내 몸이여,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면!

  이처럼 떠돌으랴, 아침에 저물손에*

  새라 새로운 탄식을 얻으면서.

 

  동이랴, 남북이랴,

  내 몸은 떠가나니, 볼지어다,

  희망의 반짝임은, 별빛의 아득임은,

  물결뿐 떠올라라, 가슴에 팔 다리에.

 

  그러나 어쩌면 황송한 이 심정을! 날로 나날이 내 앞에는

  자칫 가느른* 길이 이어가라. 나는 나아가리라

  한 걸음, 또 한 걸음, 보이는 산비탈엔

  온 새벽 동무들, 저 저 혼자… 산경(山耕)*을 김매이는.  

 

* 벌가 : 벌판가.

* 보습 : 쟁기 끝에 달아 땅을 가는 데 쓰는 농기구.

* 저물손에 : 저물녘에.

* 가늘은 : 가느다란.

* 산경(山耕) : 산에 있는 경작지

 

시집 『진달래꽃』(매문사, 1925) 중에서

 

 


 

 

김소월 시인 / 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시집 『진달래꽃』(매문사, 1925) 중에서

 

 


 

김소월 시인[金素月 1902∼1934]

1902년 평안북도 구성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정식이다. 오산 학교 중학부를 거쳐 배재 고보를 졸업하고 도쿄 상대를 중퇴했다. 당시 오산 학교 교사였던 안서 김억의 지도와 영향아래 시를 쓰기 시작하였으며, 1920년에 「낭인의 봄」, 「그리워」 등을 발표하여 시인이 되었다.

1922년에 「금잔디」, 「엄마야누나야」, 「닭은 꼬꾸요」 등을 '개벽'지에 발표하였으며, 이어 같은 잡지 7월호에 떠나는 님을 진달래로 축복하는 한국 서정시의 기념비적 작품인 「진달래꽃」 을 발표하여 크게 각광받았다. 7·5조의 정형률을 바탕으로 한시를 많이 써서 한국의 전통적인 한을 노래한 시인이라고 평가받으며, 짙은 향토성을 전통적인 서정으로 노래한 그의 시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저서로는 1925년에 그의 유일한 시집인 『진달래꽃』이 매문사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