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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옥 시인 / 청빛 환상
천 년은 마녀의 신성도 바랠 수 있는 세월이지 그 푸른 부전나비가 온 것이어서 견장에 달린 문양부터 살핀다 화원 위에 때 아닌 꽃들이 일렁인다 먼 옛날 진득했던 정향 너울춤을 추며 구름계단을 오르던 그때 부전나비는 무엇에 감전된 듯 더 높은 하늘로 빨려 가버렸다 나무 곁에서 자란 아이처럼 은은한 냄새에 영훈은 푸른 정향을 찾아 헤매고 오래 전 세상에 없지만 그녀에게 준 볕의 기억들이 녹 슬은 장식을 열어 범부채를 건넨다 방안 가득 가야금 소리 둥기당기 흐르는데 그를 내린 구름은 청하늘을 빠르게 메워간다
시집 『청빛 환상』(BOOKIN, 20160 중에서
권영옥 시인 / 응수와 타개
병아리 한 마리 옥상에 풀어놓으니, 녹색 페인트 떨어진 곳에만 모여 오른쪽, 왼쪽 연신으로 돌아가며 부리를 쪼아대던 것이란다. 쪼아도 쪼아도, 입에 들어가는 게 없자, 이번에는 햇살에 말려 먼지 털려고 내놓은 조화 쯕으로 얼른 달려가 그나마 꽃 수술만 콕콕 집어 뜯던 것이란다. 아버지, 시멘트 바닥에 부리 다 닳을까 싶어, 병아리 팔았던 노인네에게 찾아가 “내년에나 집 짓고 나서 그때 살란다“ 했다는데. 그 노인네 하는 말, ”내년에 내가 먼저 떼집을 지을지 누가 아누“ 하면서 병아리를 통째로 가져가라고 했다는데, 이쯤 되고 보면, 요즘 흔히 들리는 바둑판의 용어 하나인 응수와 타개쯤은 되지 않으려나.
시집 『계란에 그린 삽화』(시평, 20060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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