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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임애월 시인 / 사막의 달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5. 21.

임애월 시인 / 사막의 달

 

 

  어디에나 길은 있지만

  어디에도 빛은 보이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흐르던 물줄기들이

  건조하게 말라붙어 그 바닥이 드러날 때

  잃어버린 물줄기의 맥을 찾아

  나는 타클라마칸의 사구로 떠난다

  물기 하나 없이 서걱이는 모래산맥 너머로

  오래 전 잃어버린 빛들을 모아

  지상에서 가장 말갛게 떠오르는 사막의 달

  비로소 작은 모래알들이 모여 거대한 바다로 출렁이고

  놓쳐버린 길을 묻는 길손들의 발등을 적신다

  바람이 세웠다 부수는

  풍화된 시간의 낡은 탑들과 빛바랜 생각들이

  수 만의 은비늘로 부서져 질펀한 원시의 달빛바다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려 그림자의 행방조차 알 수 없는

  거대한 사막의 뜨거운 날숨 위에

  지난 계절 상처들이 모여들어 긴 등뼈를 세우는 곳

  타클라마칸에 밤이 오면

  그 어둠을 딛고 깨어난 달빛을 밟고 사람들은  

  목적지도 묻지 않는 항해를

  다시 시작한다

 

시집 『사막의 달』(문학과 사람, 2016) 중에서

 

 


 

 

임애월 시인 / 억새꽃에 대하여

 

 

  수평선이 가두어 놓은 화산섬 한켠에

  평생 일구어 온 어머니의 작은 양지

  봄햇살 겨운 손끝에 윤기 나던 그 들녘

 

  한때는 따뜻한 별들이 지상으로 내려와

  팔남매의 어린 꿈들 품어준 적 있었네

  청보리 푸른 습성으로 넓어지던 하늘가

 

  우기에도 물이 고이지 않는 건천을 돌아

  젖어있는 모든 것들은 바다로 떠났네

  수평선, 그 견고하던 절망의 경계여

 

  이름처럼 억세게 앞만 보고 가던 그길

  천형(天刑)의 바람 속에서도 휘지 못한 시간들

  초겨울 서리 찬 언덕에 은발로 나부끼네

 

시집 『사막의 달』(문학과 사람, 2016) 중에서

 

 


 

임애월 시인

1998년 《한국시학》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정박 혹은 출항』, 『어떤 혹성을 위하여』, 『사막의 달』 등이 있음. 경기PEN문학 대상, 경기시인상, 수원시인상 등 수상. 현재 『한국시학』 편집주간,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경기문학인협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