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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한옥 시인 / 뿌리
너가 내게로 오는 길은 참 좋겠네 장미, 수수꽃다리, 설유화 가득 핀 꽃 길만 따라오면 그곳에 나 목화 옷 입고 서 있으니 내가 네게로 가는 길은 참 가팔라, 아카시 뿌리를 넘어 탱자나무를 지나 얽히고 설킨 산딸기 넝쿨을 지나 그 곳에 너 억새풀잎 옷 입고 서 있으니 나를 조립한 너는 참 좋겠네 뱀딸기 열매 따다 산호라 해도 기왓장 빻은 가루 밥이라 해도 분꽃 씨 꽃분을 내 얼굴에 발라 줘도 나는 춤추는 사이보그. 너를 선택한 나는 참 서늘하네 산을 들이라 해도 믿어야 하고 나는 사람으로 보이는데 너가 사람이 아니라 해도 믿어야 하고 짐승으로 보이는 강아지도 사람이라 말하면 믿어야 하는, 어둡고 추운 이 별에서 내리고 싶은데 지독한 뿌리는 뽑히지 않네 한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또 와도 지극한 뿌리는 뽑히지 않는다네 치유되지 않는다네 그러나 치유의 길 한 가지, 죽음만이 그 뿌리 뽑을 수 있다네 죽어야 그 뿌리 뽑힌다 하네 그 뿌리 살아 불멸의 제국으로서겠네
시집 『13월 바람』(시산맥, 2017) 중에서
손한옥 시인 / 직설적, 아주 직설적인
어머니는 시인이었다 직설적인 시인이었다 백석보다 향토적이고 정지용보다 활유적이었다 행위에 가장 적절한 언어를 장치하고 오장육부를 도려내 굵은 소금을 뿌리고 바늘로 찔렀다
安東孫 문중에 연애결혼은 내가 처음이었으니 이 일은 벼락을 칠 일이기도 했지만 나를 키운 구 할은 어머니의 욕이었다 그 아름다운 얼굴에 독설의 항아리는 어디에 숨겨뒀을까 언니는 이렇게 말한다 ㅡ팔 남매로 자라면서 나는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욕이다, 라고 하지만 이건 우리 마을 어귀에 서있는 당나무에 맹세코 거짓말이 아니다
ㅡ사당패같이 돌아 다니는 년 ㅡ머리 피도 안 마른 것이 머슴아 만나는 년 ㅡ쌔가 만발이나 빠질 년 ㅡ주딩이가 열 닷 발이나 나온 년 ㅡ조둥이가 염포창날 같은 년 ㅡ갈롱 부리다 얼어 죽을 년 ㅡ지 에미 잡아먹을 년 ㅡ엄발이 돋을 데로 돋은 년 ㅡ어른이 나무랄 때 한 마디도 안 지고 아바리 총총 하는 년 ㅡ제 어미 알기로 발가락새 때만도 안 여기는 년 ㅡ양탈비탈 둘러대고 돌아다니는 년 이런 년, 나를 두고 어머니는 ㅡ고렇게 사람 말 안 들으면 눈에 밍태 껍데기 붙이고 영남루 다리 밑에 있는 너거 엄마한테 데려다 줄거라고 ㅡ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니 닮은 딸 하나 낳으라고 축원하고 또 축원하셨다 어머니, 수 년을 산문(産門) 닫고 사시다가 새삼스런 마흔에 나를 낳고 한풀이란 한풀이는 다 하셨네
달도 없는 그믐밤, 대숲이 으스스 흔들리던 밤, 갈가지 자갈 던지는 밤 밤똥을 눌 때마다 엄마는 한 겨울에도 속옷 바람으로 따라와 앉아 있다가 닭장 앞에 데려가서 절 시키고 말 시켰다 ㅡ달구님요 달구새끼님요 닭이 밤똥 누지 사람이 밤똥 누능교 인심 좋은 달구님요 우리 아, 밤똥 가져 가이소 누가 죽여도 모를 캄캄한 밤 이런 날이 잦았지만 그때 엄마는 한 마디도 욕하지 않았다
나는 정말 명태 껍데기를 붙인 엄마가 다리 밑에 살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 어느 날 몸살로 낮잠 자고 있을 때 내 이마를 짚으며 ㅡ우찌하꼬, 이래 열이 펄펄나서…맨날 지엄마를 다리 밑에 있다 했더니 참말로 여기고 쯔쯔… 나는 다 들었지 다 듣고 말았지 참말로 좋았다 할머니 같은 우리엄마, 펄펄 열이나도 좋았다
어머니의 축원은 영험이 없었다 결국 나는 아들만 둘 낳았다 단 한 번도 나는 두 아들 앞에 직설적이지 못했다 정말로 지랄할까봐 못했고 정말로 미칠까봐 못했고 혀가 빠질까봐 못했고 남사당패가 될까봐 못했고 말대로 될까봐 못했고, 못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 욕을 주시면서 내가 건너지 않아야할 강을 보여 주셨고 나에게 마르지 않는 눈물샘을 주셨고 어머니의 우량한 시 종자를 주셨다.
시집 『직설적, 아주 직설적인』(천년의시작, 2010)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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