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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영 시인 / 쓸쓸한 유랑
이것은 난해한 미로다
밀물과 썰물이 잘게 찢어놓은 지도로 강화도 앞바다가 온통 어지럽다
네게로 가는 길은 좀체 보이질 않고 판독 어려운 지도는 내게 갈 길을 일러주지 않는데 이 숱한 길을 두고 난 또 얼마나 헤매야만 네게 닿는 걸까
널 향해 응어리진 화석 같은 슬픔 덩이들이 날카로운 지느러미 세워 소리 지르는 서해
네게 닿기 위해 쉬지 않고 울며, 울며 널 부르는 유빙(流氷)이란 이름을 가진 가여운 나는 더러는 하얗게 까무러치기도 하는 겨울 섬이다
시집 『나를 디자인하다』(미네르바, 2017) 중에서
서주영 시인 / 일력(日曆)
무화과나무 앞에 서면 일력에 꾹꾹 눌러쓴 일생이 보인다
모든 것을 안으로 안으로 묵묵히 담아낸 하루치 울음이 붉은 동그라미로 그려진 늙수레한 엄마가
무화과나무 앞에 서면 뭉툭한 무릎에 덜 아문 상처를 매단 채 버티는 덤덤한 표정이 보인다
가슴을 헤치면 날짜마다 벌건 슬픔으로 차 있는
그래서 無花果는 無火果 안으로 화를 담고도 적막한 시간을 묵묵히 건너온
또한 無花果는 無化果 상처도 눈물도 아예 없었던 일처럼 고요한
시집 『나를 디자인하다』(미네르바, 2017)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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