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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인숙 시인 / 손바닥 잠언(箴言)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1.

김인숙 시인 / 손바닥 잠언(箴言)

 

 

  육백 년씩이나 묵은

  은행 알을 주웠다

 

  알알이 타당한, 알알이 자명한

  알알이 현명한 말씀,

  말씀들을 주웠다

 

  소싯적 어른들의 훈계를 귀 너머로 흘려들었던

  내 아둔함을 탓하기라도 하듯

 

  알알이 고약한,

  알알이 요란한 그 말씀들이

  손바닥에 묻어

  좀처럼 지워지질 않았다

 

  분(糞)으로 쓴 손바닥 잠언箴言을

  고이 모시고 돌아와

 

  한나절 내내

  읽고 또 읽었다

 

계간 『열린시학』 2015년 겨울호 발표

 

 


 

 

김인숙 시인 / 10cm의 세상

 

 

트위터에 눈이 내린다.

메시지만 있고 실체는 없는 눈송이들이 세상을 움직인다.  

 

명예퇴직하고 심마니가 된 <직장암 랭보>가 산으로 간 뒤 베트남 새댁 <월남국수>의 아오자이가 뜨거운 눈물을 훔친다. 신문 배달하던 <ET>의 자전거가 금성으로 간 까닭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용이 된 미꾸라지>의 성공 신화는 <매 맞는 카사노바>의 후일담에 묻혀 재빨리 잊혀졌다. 푸른 눈의 강사와 어울리던 <미미>가 기지촌에 짐을 푼다. <이웃사촌>은 어제도 오늘도 더 이상 보이지 않고 <귀 밝은 베토벤>이 쓴 시가 세상을 밝힌다. 어린왕자를 기다리던 <사막여우>는 이미 죽은 지 오래 <천국의 양치기>가 세상 모든 羊을 이끌고 강을 건너간다.

 

트위터에 눈이 내린다.

메시지만 있고 실체는 없는 눈송이들의 행렬이 세상을 바꾼다.

 

계간 『열린시학』 2015년 겨울호 발표

 

 


 

김인숙 시인

성신여자대학교와 同 대학원 일어일문학과 석사. 2012년 월간 《현대시학》 신인작품상 수상으로 등단. 제6회『한국현대시인협회』작품상 수상. 제7회 열린시학상 수상. 관동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겸임교수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