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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권기만 시인 / 내 안의 타클라마칸*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22.

권기만 시인 / 내 안의 타클라마칸*

 

 

  사막에서는 모래가 물이다

 

  흐르고 싶은 데로 흐르는 모래는

  지불할 게 남아 있지 않은 고통에 닿아야 생기는 부력

 

  혼자를 수없이 횡단해 본 자에게

  한 걸음은 소금 한 됫박보다 값지다

  멈춰 있으면서 흐를 수 있는 경지는

  자신을 수없이 허물어야 도달하는 자리

 

  허문자의 고요로 상처를 지우고

  흐르면서 흘렀던 것마저 지우는

  사막은 건너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소진하는 것

 

  모래는 발자국을 기억하지 않는다

  첫 걸음이 마지막 걸음이 되는 타클라마칸에서

  길을 찾는 건 끝끝내 헛수고다

 

*위구르어로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땅

 

시집 『발 달린 벌』(문학동네, 2015) 중에서

 

 


 

 

권기만 시인 / 발

 

 

  발 달린 벌을 본 적 있는가

  벌에게는 날개가 발이다

  우리와 다른 길을 걸어

  꽃에게 가고 있다

  뱀은 몸이 날개고

  식물은 씨앗이 발이다

  같은 길을 다르게 걸을 뿐

  지상을 여행하는 걸음걸이는 같다

  걸어다니든 기어다니든

  생의 몸짓은 질기다

  먼저 갈 수도 뒤처질 수도 없는

  한 걸음씩만 내딛는 길에서

  발이 아니면 조금도 다가갈 수 없는

  몸을 길이게 하는 발

  새는 허공을 밟고

  나는 땅을 밟는다는 것 뿐

  질기게 걸어야 하는 것도 같다

  질기게 울어야 하는 꽃도

 

시집 『발 달린 벌』(문학동네, 2015) 중에서

 

 


 

권기만 시인

경북 봉화에서 출생. 2012년 계간 《시산맥》 등단. 제7회 최치원 신인문학상 수상. 시집으로 『발 달린 벌』(문학동네, 2015)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