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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영기 시인 / 가벼운 방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24.

박영기 시인 / 가벼운 방

 

 

蓮잎 한번 위로 밀어올린 방은 물밑의 일이 아니다 목구멍을 통해 아래로 바람을 흘려보낸다 뿌리는 기낭을 부풀려 단단히 잠근다 기낭에 든 바람이 태풍의 눈을 키운다 눈이 커질 때마다 기낭 벽의 비늘 같은 눈꺼풀이 한 꺼풀씩 벗겨진다 벗겨진 눈꺼풀은 기낭 밖으로 빠져나가 진흙 발판이 된다 말끔히 비워진 방, 뼈가 들어설 자리에 하계와 상계를 잇는 아홉 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누군가 가벼워진 방을 물 위로 또 밀어올린다 蓮꽃

 

 시집 『딴전을 피우는 일곱 마리 민달팽이에게』(시인동네, 2015) 중에서

 

 


 

 

박영기 시인 / 딕스의 창녀들*

 

 

  봉제선이 터진 배에서

  뭉게뭉게 구름이 피어오른다

  의자는 쓰러지자마자 코를 골며 잠이 들고

  검은 개가 흰 개와 싸움을 사랑처럼 나누고

  침대 시트가 개가죽처럼 벗겨진다

  천장에도 벽에도 바닥에도

  인형의 사지를 묶어놓은 선술집

  젖가슴들이 취한 사내들의 머리 위에서

  바람 샌 풍선처럼 흔들거린다

  거꾸로 묶인 인형들에게는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것일까 귓속말로

  한국말, 거짓말까지, 5개 국어로

  사기 치는 추기경처럼

 

* 오토 딕스(Otto Dix)

 

 시집 『딴전을 피우는 일곱 마리 민달팽이에게』(시인동네, 2015) 중에서

 

 


 

박영기 시인

경남 하동에서 출생. 2007년 《시와 사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딴전을 피우는 일곱 마리 민달팽이에게』(시인동네, 2015)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