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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구재기 시인 / 무게에 대하여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30.

구재기 시인 / 무게에 대하여

 

 

무게를 가졌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제 주어진 길을

가다가 멈춘 울산바위는 슬프다

멈춘다는 것은

제 무게로 제 자리를 가진다는 것

울산바위는 제 몸의 무게로

자리하여 멈추고는 마냥 슬프다

 

민들레꽃에게도 무게가 있다

그 꽃의 무게만큼

질기고 긴 곧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그 뿌리로 제 몸의 무게를 감당하다가

마침내 꽃을 피우고 씨를 맺는다

 

생애 중 가장 큰 무게를 가진

그 꽃자리에 돋아난 꽃씨

무게를 버리고 나니 가볍다

가벼울수록 멀리 날 수 있다

 

민들레 꽃씨는

바람과 함께 바람에 실려

울산바위 위를 가볍게 날아, 설악을 넘어

울산바위가 훤히 보이는 동해 바닷가

너르고 푸른 밭 언덕에 사뿐 자리했다

 

격월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04년 5~6월호 발표

 

 


 

 

구재기 시인 / 허수아비

 

 

  허수아비들이

  날더러 허수아비라 부른다

  넓은 들판 진흙 속에 막대 하나 박아 놓고

  고작 입다 쓰다 버린 누더기와 밀짚모자를 걸쳐놓고

  날 허수아비라 부른다

 

  몰려오는 참새 떼

  굶주림을 워이워이 쫓아내라고

  정자나무 그늘에서 장기판이나 두드리면서

  이리저리 요행이나 바라면서

  날더러 날더러 허수아비라 부른다

 

  진흙 속의 내 다리가 썩어 가는 줄도 모르고

  마을 이장이나 지서장이나 면장이나

  공판장에 나온 농협 조합장까지도

  하나같이 날더러 허수아비라 부른다

  지나는 바람에 흔들리면서

  모두가 자꾸만 허수아비라 부른다  

 

시집 『농업시편』(도서출판 청하, 1985) 발표

 

 


 

 

 구재기 시인

충남 서천에서 출생. 충남대학 교육대학원 졸업.  1978년 《현대시학》에서 시부문 추천 완료(전봉건 시인 추천)로 등단. 시집으로 『농업시편』, 『바람꽃』, 『아직도 머언 사람아』, 『삼 십리 둑길』, 『둑길行』, 『 빈손으로 부는 바람』, 『들녘에 부는 바람』, 『정말로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내 가슴 속의 날 지우는 일이다』, 『겨울은 옷을 벗지 않는다』, 『콩밭 빈 자리』, 『千房山체

 오르다가』, 『살아갈 이유에 대하여』, 『강물』 등이 있고  제 2회 충남문학상, 충청남도 문화상 문학부문, 제6회 시예술상 수상. 현재 충남시인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