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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재기 시인 / 무게에 대하여
무게를 가졌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제 주어진 길을 가다가 멈춘 울산바위는 슬프다 멈춘다는 것은 제 무게로 제 자리를 가진다는 것 울산바위는 제 몸의 무게로 자리하여 멈추고는 마냥 슬프다
민들레꽃에게도 무게가 있다 그 꽃의 무게만큼 질기고 긴 곧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그 뿌리로 제 몸의 무게를 감당하다가 마침내 꽃을 피우고 씨를 맺는다
생애 중 가장 큰 무게를 가진 그 꽃자리에 돋아난 꽃씨 무게를 버리고 나니 가볍다 가벼울수록 멀리 날 수 있다
민들레 꽃씨는 바람과 함께 바람에 실려 울산바위 위를 가볍게 날아, 설악을 넘어 울산바위가 훤히 보이는 동해 바닷가 너르고 푸른 밭 언덕에 사뿐 자리했다
격월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04년 5~6월호 발표
구재기 시인 / 허수아비
허수아비들이 날더러 허수아비라 부른다 넓은 들판 진흙 속에 막대 하나 박아 놓고 고작 입다 쓰다 버린 누더기와 밀짚모자를 걸쳐놓고 날 허수아비라 부른다
몰려오는 참새 떼 굶주림을 워이워이 쫓아내라고 정자나무 그늘에서 장기판이나 두드리면서 이리저리 요행이나 바라면서 날더러 날더러 허수아비라 부른다
진흙 속의 내 다리가 썩어 가는 줄도 모르고 마을 이장이나 지서장이나 면장이나 공판장에 나온 농협 조합장까지도 하나같이 날더러 허수아비라 부른다 지나는 바람에 흔들리면서 모두가 자꾸만 허수아비라 부른다
시집 『농업시편』(도서출판 청하, 1985)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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