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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다희 시인 / 들린다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30.

김다희 시인 / 들린다

 

 

  장생포 사는 사시랑이 진외당숙

  평생 직업은 손바람 공성이 난 고래전문가

  문풍지 떨리는 계절이면

  당숙이 해치우는 고래, 이름도 생경한 고래

  멍텅구리고래, 맞선고래, 줄뜬고래, 홑은고래, 부채살고래, 트고막음고래…

 

  고래의 이름에 맞춰 우주의 율법을 새로 쓰는 시간

  이 엄숙함 앞에 오체투지로 엎딘 고래전문가

  살다간 집주인이 그려둔 고래의 경로를 찾아

  함실에 기대 돛을 올린다

 

  바다의 주소에 닿지 않고도

  깔축없이 해내는 고래 잡는 일

 

  제 몸 바쳐 주린 배를 채워준 난바다의 고래나

  제 몸 데워 온기를 전하는 구들장 밑 고래나

  보살행의 삼보일배는 매 한 가지

 

  사람 속에서 사람이 힘들고

  세상 속에서 세상이 두려운 법

  바로 서야 하는 세상에 익숙지 않다면

  이제는 엎드려 사는 법을 익혀야 할 때

 

  들린다, 고래들의 할喝!

 

시집 『봄의 시퀀스』(시로여는세상, 2014) 중에서

 

 


 

 

김다희 시인 / 생청붙이다

 

 

  허리 굽은 白頭翁*

  고무신 끌고 꽃밭으로 가고 있다

  쇠죽가마에 철사 달궈 이름 새기던

  기차표 고무신을 가로지르며

  잘가당잘가당, 기적 소리 자꾸 목이 쉰다

 

  고무신 신었을 때부터 그녀의 종교는 꽃밭

  룰루랄라, 꽃밭의 교주는 고무신 신은 여자

  그녀들이 정한 약속은 누구도 본 적 없는 것

  금기시 해 유혹적인 것

  치매라 쓰고 꽃이라 읽지

 

  꽃대는 두고 꽃만 따야 하는 그녀들의 법칙

  목이 꺾인 꽃

  다시는 기억을 퍼 올리지 못하지

 

  그런 밤이면 여자는 오른쪽 젖가슴을 도려낸다네

  그것은 꽃을 잘 따기 위한 비책

  한쪽 가슴이 사라진 여자

  붉은 가슴을 뒤적이며 지난 흔적의 안부를 묻지

 

  꽃밭이 천 리 길인 나는

  생청붙이는 허릅숭이

  그녀가 꺾은 건

  꽃이 아니라

  꽃을 흔든 바람이라며

  사라진 가슴 속에 쑤셔 넣고 있지

 

*白頭翁-할미꽃의 한자어

 

시집 『봄의 시퀀스』(시로여는세상, 2014) 중에서

 

  


 

김다희 시인

부산에서 출생. 2013년 《시안》으로 등단. 시집으로 『하늘 더해가기』와 『봄의 시퀀스』가 있음. 현재 월간 『좋은만남』, 계간 『한국동서문학』 편집국장. 문화관광부  <감천문화마을>, <민락수변공원> 마을미술프로젝트 집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