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김윤선 시인 / 결심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30.

김윤선 시인 / 결심

 

 

  카밀라 카스틸로스*는

  스테이크 접시바닥에 고인 핏물을 보고 고기를 끊기로 결심한다

  살아 숨쉬고, 웃고, 걸을 수 있던 고기 이전의 삶에 대해

  어렴풋이 슬픔이 느껴질 때

  그것은 이미 음식이 아니기에

 

  비좁은 공장식 축사에 갇혀 평생을 살다

  죽기 직전 단 한 번의 외출이 허용되는 도축용 소의 삶에 대해

  음식은 음식일 뿐

  음식 이전의 존재에 관해 알아 뭐하겠냐며

  그의 친구들은 가슴살에 A1소스를 뿌렸다

 

  진안에 사는 또 다른 그의 친구는

  뜨거운 냄비 안에서 눈 뜬 채 웃고 있는 새끼돼지를 보고

  고기를 끊기로 결심한다

  태중의 새끼돼지나 갓 태어난 새끼돼지를 쓴다는

  진안명물 애저찜

  끓는 물속이 엄마 자궁 속이라도 되는 듯 웅크린 주검이 되레 편해 보인다

 

  누구나 카밀라 카스틸로스의 접시가 불편하진 않지만

  산 채 저며지는 횟감 앞에 누구나 불편할 수도 있다

  개를 사랑하며, 돼지를 먹고, 소를 입고 사는 순환계에서

  핏물 너머의 공포와 고통에 찬 순간을 짐작할 수는 있다, 누구나

  자기도 모르게 결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카밀라 카스틸로스: 스테이크 접시 바닥에 고인 핏물을 보고 실제로 완전 채식인이 된 실존의 평범한 인물

 

계간 『시인시각』 2012년 여름호 발표

 

 


 

 

김윤선 시인 / 환생소네트

 

 

  당신은 참 맛나게도 나를 먹고 계시는군요

  죽기 직전 흠씬 맞아 살은 연하고,

  다행히 물을 많이 처먹이지 앉아 씹을수록 고소합니다

  당신은 이제 왼쪽 발목과 머리뼈를 우려낸 뽀얀 국물을 마십니다

  시원해시원해 호호 불며 마십니다  

 

  당신께 먹히기 오래 전

  나도 당신을 맛있게 뜯어 먹곤 했지요, 그뿐 아니라

  뱃속에 든 새끼의 연한 가죽으로 지은 핸드백을 탐하였습니다

  당신의 껍질을 벗겨 뻔 한 내 껍질위에 두르고 다녔습니다

  당신이시여!

  부디 이 몸 더 샅샅이 발라드소서

  아무 가책도 느끼지 말고 뼈까지 쪽쪽 빨아드소서

 

  두 번 다시 당신이 내가 되지 않기를

  나 또한 당신이 되지 말기를

  블랙홀의 우주를 흐르고 흐르다

  혹시 마주치더라도, 그땐 절대 몰라볼 것이며

  먹지도 먹히지도 말고

  영원히 여기 오지 말자고

  당신이 수저를 놓을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계간 『문학마당』 2008년 가을호 발표

 

 


 

김윤선 시인

서울에서 출생. 중앙대 예술대학원 졸업. 2006년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비상구〉가 당선되어 등단. 2009년 요가시집 『가만히 오래오래』 출간. 현재니콜의 흐름(Flow)요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