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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민 시인 / 에로틱한 찰리
찰리가 에로틱해도 되는 걸까 문장은 이어지지 않는다 플룻을 부는 여자의 입술처럼 플롯은 은밀하다 나는 찰리에 대해 생각한다 창문에서는 붉은 제라늄이 막 시들고 있다 찰리는 어떻게 됐을까 찰리에 대해 생각하기 전까지 나는 찰리를 몰랐다 그런데 찰리를 생각했고 찰리가 걱정스러웠다 찰리를 생각하기 전의 찰리와 지금의 찰리 사이에 무엇이 지나 갔을까 카페의 테라스에서 여자가 플룻을 꺼낸다 나는, 찰리를 생각한 내가 찰리이고 누구인지 몰랐던 찰리는 찰리 a이며 지금의 찰리는 찰리 b라고 구별한다 문제는 찰리에 대해 생각하자 찰리가 떠났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찰리 a에 대해 생각했고, 그러자 찰리 a는 찰리 b가 되었고, 찰리는 빌리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찰리에서 빌리로 옮겨간 것은 순간적인 일이다 붉은 입술이 플룻에 닿는 순간 찰리는 찰리 b가 떠난 것이라고 느꼈다 그러자 찰리 a가 누구였는지 생각나지 않았고 나도 찰리일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빌리가 왔다 세계를 잠시 해체하는 것 같은 느낌이 찰리와 빌리 사이로 지나갔다 나는 그것을 에로틱한 각성이라고 적어둔다 여자가 플룻을 가방에 도로 넣는다 플롯은 숨어 있다
시집 『에로틱한 찰리』(문학동네, 2015) 중에서
여성민 시인 / 장미 여관
아무렇게나 떠오르는 첫 문장으로 인사를 하고 장미 여관에 가요
애인은 한 마리 새와 핏빛 노을 계단은 파라핀처럼 녹아내리고 방금 사랑을 나눈 방에선 하얀 밀이 자라요 벽에는 귀를 댄 흔적들이 포개져 있죠
자다가 일어나 차가운 물을 마시고 발포와 발화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어요
따뜻한 바람이 부는 도시 발화하는 총구에서 새의 눈이 태어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죠
눈이 생겼다는 건 조준 되었다는 것 방들은 접혀 있어요
문을 열 때마다 애인들의 얼굴이 뒤바뀌죠 아무렇게나 떠오르는 첫 문장으로 인사를 하고 우리 장미 여관에 가요 애인은 열 마리 푸른 나비와 핏빛 노을
애인의 그곳은 귀를 닮았는데요 밤이 오면 손을 포개고 그곳에 귀를 밀어 넣어요 한 개 두 개 밀어 넣어요 까마귀 떼처럼 밀밭 위를 날아 검은 귀들이 사라져요
열 번의 밤이 오고 한 번의 아침,
귀가 사라진 얼굴에서 장미가 돋아나요 영토 없는 꽃처럼
뒤집어져서, 벽에서, 검은 벽에서
꽃들이 발포해요
생의 마지막 문장은 언제나 꽃의 발포에 관한 것 아무렇게나 떠오르는 첫 문장으로 이별을 하고
시집 『에로틱한 찰리』(문학동네, 2015)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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