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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석중 시인 / 폐광
거울 앞에 서면 그 속 다 드러나네 제 몸 파먹고 살아온 세월 지렁이 흔적처럼 지키지 못한 사랑 허물 벗듯 얼레미처럼 내보이네 헛디뎌 자빠졌다 일어선 길 몇 가닥 위 한때 대낮같이 화장발 잘 받던 얼굴 알코올 솜으로 닦으면 닦을수록 분명해지는 위선의 낯바닥이며 어설픈 눈물자국까지 다 드러나네 뽕잎처럼 입이 좀 컸더라면 치맛바람에 날개를 붙이고 기둥서방 몇은 먹여 살렸을 텐데 가슴 넓어 따뜻한 손이면 그냥 넘어졌다네 립스틱을 지운 입술은 백지장처럼 핏기가 없고 그 큰 눈엔 이제 풍덩 빠져줄 사내 하나 없다네 메마른 자궁은 폐광같이 닫히고 불씨를 포장한 까만 그리움조차 밭아버렸네
시집 『숨소리』(책나라, 2005) 중에서
나석중 시인 / 고요의 소리
외딴 숲 속 길 무심으로 혼자 걸어가면서 돌 위에 돌 올려놓고 고요 위에 침묵을 올려놓는다
돌 위에 돌 고요 위에 침묵 이걸 적막강산이라 부르는가
숨 한 번 크게 들이쉬고 가만가만 고요의 소리 재운다 고요의 소리와 함께 사라진다
시집 『풀꽃독경』(북인, 2014)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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