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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나석중 시인 / 폐광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7. 4.

나석중 시인 / 폐광

 

 

 거울 앞에 서면 그 속 다 드러나네

 제 몸 파먹고 살아온 세월

 지렁이 흔적처럼 지키지 못한 사랑

 허물 벗듯 얼레미처럼 내보이네

 헛디뎌 자빠졌다 일어선

 길 몇 가닥 위

 한때 대낮같이 화장발 잘 받던 얼굴

 알코올 솜으로 닦으면 닦을수록

 분명해지는 위선의 낯바닥이며

 어설픈 눈물자국까지 다 드러나네

 뽕잎처럼 입이 좀 컸더라면

 치맛바람에 날개를 붙이고

 기둥서방 몇은 먹여 살렸을 텐데

 가슴 넓어 따뜻한 손이면  

 그냥 넘어졌다네

 립스틱을 지운 입술은

 백지장처럼 핏기가 없고

 그 큰 눈엔 이제 풍덩 빠져줄  

 사내 하나 없다네

 메마른 자궁은 폐광같이 닫히고

 불씨를 포장한

 까만 그리움조차 밭아버렸네

 

시집 『숨소리』(책나라, 2005) 중에서

 

 


 

 

나석중 시인 / 고요의 소리

 

 

  외딴 숲 속 길

  무심으로 혼자 걸어가면서

  돌 위에 돌 올려놓고

  고요 위에 침묵을 올려놓는다

 

  돌 위에 돌

  고요 위에 침묵

  이걸 적막강산이라 부르는가

 

  숨 한 번 크게 들이쉬고

  가만가만 고요의 소리 재운다

  고요의 소리와 함께 사라진다

 

시집 『풀꽃독경』(북인, 2014) 중에서

 

 


 

나석중 시인

전북 김제에서 출생. 2005년 시집『숨소리』를 상재면서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숨소리』,『나는 그대를 쓰네』, 『촉감』, 『물의 혀』, 『풀꽃독경』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