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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한용운 시인 / 님의 침묵

by 파스칼바이런 2019. 5. 20.

한용운 시인 /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黃金)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서(盟誓)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微風)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追憶)은 나의 운명(運命)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희망의 문학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源泉)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希望)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沈默)을 휩싸고 돕니다.

 

 


 

만해 한용운 [卍海 韓龍雲 1879.8.29 ~ 1944.6.29] 시인

1879년 충남 홍성에서 출생. 1918년 월간지 『유심』을 발간하면서 작품 활동 시작. 주로 일제에 저항하는 민족정신과 불교에 의한 중생구제를 노래했음. 3.1운동 당시에는 33인을 대표하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여 피검되어 3년간의 옥고 치름. 불교의 대중화와 항일독립사상의 고취에 힘을 기울였으며, 1944년 입적. 조선의 불교계 및 독립운동에 지대한 업적을 남겨, 대한민국 건국

공로훈장 중장 수여되고 1967년 탑골 공원에 용운당만해대선사비가 건립됨. 저서로는 시집 『님의 침묵』 외에 『조선불교유신론』, 『십현담주해』, 『정선강의채근담』 등이 있으며 사후에『한용운전집』, 『한용운시전집』이 간행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