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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광섭 시인 / 城北洞 비둘기

by 파스칼바이런 2019. 5. 20.

김광섭 시인 / 城北洞 비둘기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1번지 채석장에 도루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溫氣)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聖者)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월간 『월간문학』 1968년 11월호 발표

 

 


 

김광섭  [金珖燮, 1906.9.21 ~ 1977.5.23] 시인

1905년 함북 경성에서 출생하였으며 중동학교 및 와세다 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문학활동은 1927년 창간한 순문학 동인지 《해외문학(海外文學)》과 1931년 창간한 《문예월간(文藝月刊)》 동인으로 시작했다.1945년 중앙문화협회를 창립했고, 1946년 전조선문필가협회 총무부장, 1948년 이승만 대통령 공보비서관, 1956년 자유문학가협회 위원장을 지냈다.

1957년 자유문학사를 세워 〈자유문학〉을 창간했으며, 1958년 세계일보사 사장이 되었다. 1959년 예술원 회원이 되었고, 1952~70년 경희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시집으로 첫시집 『憧憬』(1938) 이후 『마음』(1949), 『해바라기』(1957), 『성북동 비둘기』(1969), 『反應』(1971) 등이 있다. 그밖의 저서로 『김광섭시전집』(1974), 시선집『겨울날』(1975), 자전문집 『나의 獄中記』(1976) 등을 간행했다. 대한민국문화예술상, 국민훈장모란장, 서울시문화상을 수상했다. 1977년 타계했다.

 

작품 해설

 

 

  김광섭 시인. 그의 호는 이산(怡山)이며 1905년 함경북도 경성에서 출생했다. 중동학교와  와세다(早稻田)대 영문과 졸업후에 해외문학연구회, 극예술연구회 동인으로 활약했다. 1933년 《삼천리》에 「현대영길리시단」을 번역 발표했으며, 같은 해에 「개 있는 풍경」을 《신동아》에 발표하며 등단했다. 일제 말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1941년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했다는 이유로 수감되어 1944년 출감했다.  해방 이후에는 이승만 대통령 공보비서관도 지냈다. 경희대 교수, 세계일보 사장 등을 역임했다

 

  초기시는 꿈과 관념의 세계를 노래하는 한편 일제하의 암담한 시대 상황에서 오는 고독, 허무, 불안이 반영된 작품을 썼으나, 후기에 와서 생경한 관념 세계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원숙한 경지의 작품을 썼다. 광복 후에는 정치적인 이상이 주제를 이루며, 「성북동 비둘기」는 그의 현실인식과 사색의 깊이를 잘 보여주었다.

 

  그의 시에는 내면적인 슬픔이 담겨져 있다.  그가 즐겨 택한 주제는 이별이고 슬픔이라는 어휘를 끊임없이 사용하였다.   그의 세계는 기본적인 자유가 박탈된 채 감옥에 가야했던 일본 식민지의 슬픈 세계였다. 그는 그러한 상징을 감상적인 시에 담았다. 식민지와 실향의 비애를 그려낸 그의 시를 통한  자연으로의 도피, 사랑과 슬픔의 관계는 비참한 세상으로부터 탈출하려는 그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모두에 대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의 초기시는 꿈과 관념의 세계를 노래하는 한편 일제하의 암담한 시대 상황에서 오는 고독, 허무, 불안이 반영된 작품을 썼으나, 후기에 와서 생경한 관념 세계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원숙한 경지의 작품을 썼다. 광복 후에는 정치적인 이상이 주제를 이루며, 『성북동 비둘기』는 그의 현실인식과 사색의 깊이를 잘 보여주었다.

 

  이 시는 1965년 4월 서울운동장에서 야구 구경을 하다가 갑자기 고혈압으로 쓰러진 이후 여러 해를 병고와 싸우면서 생사를 새로이 관조하게 된  그의 노년의 원숙한 수작(秀作)이다. 이 작품이 쓰여진 것은 그가 63세 때로 투병생활 3년만이다. 당시 그는 재직하던 경희대학교도 정년으로 물러났던 때였으나 시인으로서는 결코 정년 퇴직하지 않았다. 오히려 생애를 건 완성을 향하여 「성북동 비둘기」, 「생의 감각」, 「산」, 「행인」, 「50년」, 「시인」 등 노경(老境)서 얻은 우수한 작품을 잇달아 발표하여 화제가 되었다.

 

   그는 <성북동 비둘기>를 쓰게 된 모티브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나는 뇌출혈로 메디칼센터에 입원하여 오랜 혼수 상태를 겪으면서 사경을 헤맸어요. 그 후 성북동 나의 집 마당에 자리를 펴고 앉았는데, 따스한 훈풍이 불고 꽃이 피어 있었어요. 뇌일혈이란 말을 듣고 내 시적 생명은 끝났다는 절망감을 안고 있었지요. 그 때, 하늘을 바라보다가 아침마다 하늘을 휘익 돌아 나는 비둘기떼를 보게 되었어요.   「성북동 비둘기」의 착상은 거기에서였지요. 돌 깨는 소리가 채석장에서 울리면 놀라서 날아오르는 새들, 그러나 저것들이 우리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 줄 것인가. 돌 깨는 산에서는 다이나마이트가 터지고 집들은 모두 시멘트로 지어서 마음놓고 내릴 장소도 없는 저것들이란 데 생각이 머물렀어요.”  

 

  이 시는 1960년 중반 이후 급격히 진행된 산업화, 도시화로 인해 황폐해진 자연으로부터 점차 소외되어 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성북동 비둘기'를 통해 보여 주는 작품이다.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둘기'가 무엇을 뜻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비둘기'는 도시화, 산업화로 인하여 소외되어 가는 인간을 상징하고 있으며, 비판자적 구실을 한다. 또한 비둘기를 통해 본 우리의 메마른 삶을 주제로 삼고 있으며, 작품에 일관되어 스며있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어조가 세상을 살아가는 참다운 의미와 가치가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서울시 성북동의 산에 사는 비둘기는 도시 개발에 의해 삶의 터전을 상실한 성북동 사람이며, 나아가서 산업화의 과정에서 인간성을 상실한 인간, 소외된 인간으로 그 의미를 확대해 볼 수 있다.

 

   여기서의 비둘기는 집을 잃은 비둘기다. 순수한 자연미와 평화의 상징이라 볼 수 있는 비둘기가 발 붙일 것 없이 쫓기는 상황은 물밀 문명의 발달이 가져온 자연의 추방이기도 하고, 그 살해이기도 하다.

 

  따라서 비둘기는 사랑과 평화, 축복의 메시지 전달자라는 일반적 상징을 뛰어넘어 근대화, 공업화로 소외되어 버린 현대인을 비추어 주는 거울이며, 그에 대한 관찰자 내지 비판자로 형상화되어 있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근대화, 산업화에 따르는 자연 파괴와 인간성 상실이라는 현실 인식이 이 시의 시작 동기(詩作動機)다. 그리고 김광섭 시인의 초기 시에서 보이던 사변성(事變性)이나 관념성에서 벗어나 서민과의 일체감 속에서 격조 높은 문명 비평의 경지에 이르고 있다.

 

  먼저 '번지가 새로 생겼다'는 표현은 주택가가 들어섰다는 뜻이지만, 문명의 침투로 인한 자연의 파괴를 의미하며, '번지가 없어졌다'는 표현은 비둘기가 보금자리를 잃어버렸음을 뜻한다. 또한,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 '채석장 포성' 등은 현대 문명의 병폐를 의미하며, '가슴에 금이 갔다'는 것은 이러한 문명의 병폐로 인해 파괴된 인간성, 즉 사랑이나 평화가 모두 사라졌음을 뜻한다.

 

   그리고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와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와 같은 구절은 현대 문명에 의해 파괴된 인간 존재의 애처로움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기계 문명으로 인해 점차 세속화되어 가는 현실 속에서, 이제는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 낳지 못하는 쫒기는 새'가 되어 버린 그들이 '금방 따낸 돌 온기에' '향수'를 느낄 수밖에 없는 비극적 정경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인간에 의해 저질러진 자연의 파괴로 말미암아 생존의 터를 상실한 비둘기가 채석장 포성에 지향없이 쫓기며 넉넉했던 옛날을 그리워하는 비극적 모습을 제시함으로써, 오늘날의 황폐화된 인간 삶과 그에 대한 연민을 통해 참다운 삶의 회복을 희구하는 한편,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촉구하고 있다.

 

   근원에의 향수와 사회 비평 의식에 입각한 김광섭의 시는, 이 작품에서 보여 주고 있듯 현대적 의미의 관념을 깊이 간직하면서도 관념어의 구사나 표현의 추상적 부분을 말끔히 제거하여, 구체적 표현의 미를 세련된 솜씨로 나타낸 것이 특징이다.

 

  인간은 자연을 지배한 것처럼 보이나 오히려 더 큰 것을 상실하고, 살벌하고도 속세화해 가는 현실과 직면하고 있다. 이 시의 문명 비평적인 사회적 측면이 여기에 있다.

 

  결국, 시인은 인간 스스로 창조한 물질 문명 앞에서 자연의 훼손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인간성마저 박탈당하는 아이러니컬한 현상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가 목표하는 것은 현대 문명에 대한 야유나 비판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고, 물질 문명 시대에 자연의 소중함과 사랑ㆍ평화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다.

 

≪참고문헌≫  韓國代表詩評說(鄭漢模·金載弘 編著, 文學世界社, 1983) 외 多數

 

 


 

웹진  『시인광장』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