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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한하운 시인 / 보리피리

by 파스칼바이런 2019. 5. 19.

한하운 시인 / 보리피리

 

 

  보리 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 ㅡ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 ㅡ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인환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 ㅡ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 ㅡ ㄹ 닐니리

 

시집 『보리피리』(인간사, 1955) 중에서

 

 


 

한하운 [韓何雲, 1920.3.20 ~ 1975.2.28] 시인

본명 태영(泰永). 함경남도 함주 출생. 중국 베이징[北京]대학 농학원을 졸업한 후 함남 ·경기 도청 등에 근무하다가 나병의 재발로 사직하고 고향에서 치료하다가 1948년에 월남, 1949년 제1시집 『한하운 시초(詩抄)』를 간행하여 나병시인으로서 화제를 낳았다. 이어 제2시집 『보리피리』를 간행하고, 1956년 『한하운시전집』을 출간하였다.

 1958년 자서전 『나의 슬픈 반생기』, 1960년 자작시 해설집 『황토(黃土) 길』을 냈다. 자신의 천형(天刑)의 병고를 구슬프게 읊은 그의 시는 애조 띤 가락으로 하여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작품해설

 

 

한하운(韓何雲1919.3.20∼1975.3.2)시인. 그의 본명은 태영(泰英)이며 1919년 함경남도 함주에서 출생했다. 1932년 함흥제일공립보통학교, 1937년 이리농림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1939년 동경 세이케이고등학교(成蹊高等學校) 2년을 수료했다. 그 해 중국 북경으로 건너가 1943년 베이징[北京]대학 농학원을 졸업한 후 1944년부터 함경남도 도청 축산과에 근무하였으나 1945년 한센씨병(나병)의 악화로 관직을 사직하고 귀향해서 한때 서점을 경영하기도 하였으며 1946년에는 함흥 학생데모사건 혐의를 받고 체포되었다가 석방된다. 그 뒤 그는 치료비로 가산을 탕진하고 1948년 월남, 유랑의 생활을 하기에 이른다.

 

그 뒤 자신의 투병 생활과 함께 1950년 성혜원(成蹊園), 1952년 신명보육원(新明保育院) 등을 설립, 운영하였고, 1953년 대한한센연맹위원회장으로 취임하여 나환자 구제사업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그 뒤 1966년에는 한국사회복귀협회장을 역임하는 한편, 무하문화사(無何文化社)라는 출판사도 경영한 바가 있다.

 

그의 창작 활동은 학창시절부터 시작되었으나 본격적인 문단 활동은, 1949년 이병철(李秉哲)의 소개로 ≪신천지 新天地≫ 4월호에 〈전라도길〉 외에 12편의 시를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같은 해에 첫 시집 『한하운시초』를, 1955년에는 제2시집 『보리피리』를, 1956년에는 『한하운시전집』을, 그리고  1957년 자서전 『나의 슬픈 반생기』와 1960년 자작시 해설집 『황토(黃土) 길』을 펴냈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는 시를 거의 쓰지 않았다. 그의 작품은 나환자라는 독특한 체험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감상으로 흐르지 않고 객관적 어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징을 찾을 수 있다. 또한, 온전한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서정적이고 민요적인 가락으로 노래하고 있다는 점도 그의 시적 특징으로 지적할 수 있다.

 

 

자신의 천형(天刑)의 병고를 구슬프게 읊은 그의 시는 애조 띤 가락으로 하여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한하운의 시세계는 김소월 - 박목월로 이어지는 우리 시의 전통적 서정과 율조, 생명파 시인들의 원초적 생명의지 등에 맥이 닿아 있다. 한하운의 독특한 정서는 이 같은 전통적 요소와 결합되어 공감의 폭을 넓히고 있다.

 

그는 평생토록 자신이 고통을 겪었던 나병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위한 사회사업에 힘썼으며 월간 『새빛』을 1964년에 창간하였고, 오랜 병고 끝에 1975년에 작고했다.

 

그의 유해는 경기도 김포군 장릉공원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오늘 소개하는 「보리피리」는 한하운(韓何雲) 시인의 여러 시들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시편이다. 다른 뛰어난 시편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가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간 것은 노래 때문이었다. 1957년 작곡가 조념(趙念)씨(74)가 당시 중앙방송라디오(현재 KBS)의 청탁으로 <금주의 노래>라는 프로그램에 이 곡을 발표, 대단한 호응을 일으켰던 것이다. 이 시가 《서울신문》에 발표됨으로써 한하운에게 ‘보리 피리의 시인’이라는 별명이 붙여졌으며 그의 제2 시집 『보리피리』의 표제(表題)가 되었다.

 

이 시는 나병(癩病)에 걸려 걸식(乞食)과 멸시(蔑視) 속에 구름처럼 떠돌아다니던 시인이 보리 피리를 불며 인간적 고독, 향수, 천형(天刑)과도 같은 괴로움을 달래는 눈물겨운 모습을 떠올려 준다. 그러니까 이 시는 ‘보리 피리’에서 환기되는 소박한 낭만적 정서가 아닌, 나병(癩病)이라는 육체적 고통을 아름다운 서정으로 극복한 명작이다. 일반인과 격리되어 살아가는 고통 속에서 보리 피리를 불며 어린 시절 꽃 청산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시인은 ‘인환의 거리(인간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와 ‘인간사(人間事)’를 꿈꾸며 절망하지만, 마침내 방랑의 숱한 산하와 눈물의 높은 언덕을 건너는 더 큰 아픔을 통해 자신의 절망을 내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정형률을 살린 민요체의 정감 어린 가락으로 비유나 상징이 없는 간결하고 평이한 시어로 구송(口誦)하듯 노래하여 진정 아름다운 시로 격상시킨 이 작품은 자신의 한 맺힌 삶을 ‘피 ―ㄹ 닐니리’라는 애절한 피리 소리에 담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므로 시인에게 있어서 피리를 부는 것은 자신의 존재론적 한계를 초월하고자 하는 행위이자, 자신을 학대하는 인간 세상에 대해 따뜻한 애정을 실어 보내는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시는 반복 구조로 되어 있다. 4연 모두 ‘보리 피리 불며 ~ 피―ㄹ 닐니리’로 되어 반복의 율조를 자아내며, 보리 피리의 소리시늉말이 또 운율감을 준다.

 

  제1연에는 새파란 보릿대를 꺾어 피리를 만들어 불던 옛날 고향의 봄 언덕을 그리워하는 심정이 나타나 있다.

 

  제2연에서는 보리피리를 불면서 떠오르는, 유년 시절의 고향 - 꽃동산과 청산 -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그렸다.

 

  제3연에서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던 거리와 뭇 인간들의 삶과 일을 그리워하고 있다.

 

  제4연에서는 자신이 방랑하던 여러 산과 강, 그 눈물나던 언덕들에 얽힌 한 맺힌 비애의 심정을 그리고 있다.

 

이 시의 의미소(意味素)는 각 연의 2,3행인데 현실에서 과거로 돌아갔다 되돌아오는 구조를 가진다. 과거는 긍정적 삶의 모습이요, 현재는 부정적 삶의 모습이다.

 

현실에 지친 화자가 그리워하는 고향은 따뜻한 인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던 곳이기도 하다. 봄 언덕 그리운 고향을 향하면 꽃 피던 청산이 그리워진다.

 

그런데 화자는 그런 청산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이다. 화자는 또한 인환(인간 세상)에서도 이탈된 존재이다. 사회 공동체에서 소외되어 있기에 그는 사무치도록 인간사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그는 청산에서도 인환(人寰)에서도 버림받은 존재로 방랑의 길을 걷고 있다. 이 ‘방랑의 기산하’를 눈물로 넘었으며 눈물의 언덕을 넘으며 ‘피―ㄹ 닐니리’ 보리 피리를 부는 것이다.

 

시인 한하운이 천형(天刑)의 문둥병을 앓다 죽어 간 사람임을 모른다고 해도 이 시의 겉에 드러나는 한(恨)을 읽을 수 있다. 보리 피리는 한의 소리이며, 그 한의 소리는 독자들에게 소외 받는 인간의 고독과 상처를 공감하게 한다.

 

 한하운 시인. 그는 나병 환자로서의 비통과 울분과 괴로움을 시를를 통하여 극복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 회복을 지향하고 있다.

 

나병으로부터 오는 절망과 세상 사람들과 유리된 채 유랑 생활을 해야 하는 고독 속에서 고향과 어린 시절 그리고 세상사가 그리워 보리피리를 부는 시인의 다음 글은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청운의 뜻이 어허, 천형의 문둥이가 되고 보니 지금 내가 바라보는 세계란 오히려 아름답고 한이 많다. 아랑곳없이 다 잊은 듯 산천 초목과 인간의 애환이 다시금 아름다워 스스로 나의 통곡이 흐느껴진다. 나를 사로잡는 것, 그것은 울음 속에서 터지는 모든 운율이 나의 노래가 되고 피리가 되어 조국 땅 흙 속에 가라앉을 것이다."

 

 ≪참고문헌≫ 나의 슬픈 半生記(韓何雲, 人間社, 1957)

 ≪참고문헌≫ 韓何雲詩鑑賞(朴巨影 解說, 人間社, 1959)

 ≪참고문헌≫ 韓國現代文學史探訪(金容誠, 玄岩社, 1984)

 

 


   

우원호(禹原浩) 시인

1954년 서울에서 출생.1983년 육군 중위 예편.  2001년 월간 <문학21> 시부문 신인작품상에 당선. 시집으로『도시 속의 마네킹들』이 있음.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시인광장 편집주간 역임. 현재 웹진 『시인광장』 발행인 겸 편집인과 도서출판 시인광장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