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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신동엽 시인 /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5. 22.

신동엽 시인 /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 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 항아리.

 

아침 저녁

네 마음속 구름을 닦고

티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畏敬)을

알리라.

 

아침 저녁

네 머리 위 쇠 항아릴 찢고

티 없이 맑은 구원(久遠)의 하늘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연민(憐憫)을

알리라

차마 삼가서

발걸음도 조심

마음 조아리며.

 

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눈물 흘려

살아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해설>

이 시의 내용은 길이에 비해 단순하다. 먹구름 낀 하늘 아래에서 머리에 쇠 항아리를 덮고 살아야 했던 이 땅의 백성들의 삶이 시작동기(詩作動機)로 되어 있다. 한 번도 맑은 하늘 아래서 제대로 된 삶을 살아 보지 못했던 이 땅의 사람들이 인간적인 삶을 위해서 현실을 바로잡자는 것이다.

 

제1연은 역사 의식과 사회 의식을 관련시켜 해석해야 한다. 동학 혁명과 31 독립 운동, 419 혁명 때 잠깐 맑은 하늘이 빛났었으나 백성들은 한 번도 맑은 하늘 아래서 마음껏 자유와 평화를 누려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제2, 3연은 우리 선인들이 살아야 했던 역사적 상황과 짓눌린 삶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그들은 암담한 상황에서 짓눌린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먹구름'이 덮인 하늘은 '맑은 하늘'과 대립되는 심상으로 암담한 상황을 뜻하고 '지붕 덮은 / 쇠 항아리'는 억압과 구속을 뜻한다.

 

제4연은 상황의 극복을 위한 민족사적 과제를 제시하였다.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먹구름'을 닦고,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쇠항아리를 찢으라는 것이다. 이 시의 핵심이 되는 부분이다.

 

제5연은 백성들이 왜 현실에 참여해야 하는가를 역설한다.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다. 끊임없이 먹구름을 닦고, 쇠항아리를 찢어야만 맑은 하늘을 볼 수 있고, 삶의 외경(畏敬)과 연민(憐憫)을 알게 되리라는 것이다.

 

제7,8연은 자유와 평화가 없는 세상에서 서러움을 당하면서 인고(忍苦)의 나날을 살 수밖에 없는 이 민족의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시의 흐름으로 볼 때는 현실 극복의 의지를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제9연은 첫째, 연의 반복으로 아직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이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실 극복 의지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는 민중의 의지를 서사시로 표현한 '금강'의 제9장에도 삽입된 작품으로 저항적 각도에서 이해될 수 있다. 몇 군데 상징적인 표현이 있으나, 구체성을 띤 시이기 때문에 난해하거나 모호한 표현도 없다. 서정성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으나, 진실하고 힘찬 어조는 감동의 깊이를 더해준다.

 

 


 

 

신동엽 시인 / 봄은

 

 

봄은

남해에서도 북녘에서도

오지않는다

 

너그럽고

빛나는

봄의 그 눈짓은

제주에서 두만까지

우리가 디딘

아름다운 논밭에서 움튼다.

 

겨울은

바다와 대륙 밖에서

그 매서운 눈보라 몰고 왔지만

이제 올

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

우리들 가슴속에서

움트리라

 

움터서

강산을 덮은 그 미움의 쇠붙이들

눈 녹이듯 흐물흐물

녹여 버리겠지

 

한국일보, 1968년 2월 4일

 

<해설>

통일에 대한 시인의 뜨거운 염원을 노래한 시로, 적절한 상징과 비유를 통해 참여적인 성격의 시를 서정시로 잘 승화시킨 작품이다. 전체 4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분단의 현실을 '겨울', '통일의 시대를 '봄'으로 상징해서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1연에서 화자는, 우리의 통일은 외세(外勢)에 의해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며 우리 민족의 통일을 이룰 수 있는 주체는 우리 민족임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봄'은 통일, 또는 통일이 이루어진 날로 민족의 동질성이 회복되는 날이다. 그리고 '남해'와 '북녘'은 우리를 둘러싼 외부 세력을 상징한다.

 

2연에서는 우리의 자주 통일을 강조하고 있다. 화자는 통일의 싹은 우리 민족이 살고 있는 이 땅('우리가 디딘 아름다운 논밭')에서만 움튼다고 하며, 자주적 역량을 길러 통일을 이룩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3연에서는 분단의 원인과 통일의 방안을 제시했다. 여기서 '겨울'은 민족의 분단 상황을, '눈보라'는 분단의 고통, '바다'와 '대륙 밖'은 주변 국가, 즉 외세를 상징하고 있다. 즉 화자는 비록 우리가 외세에 의해 분단되기는 했지만, 분단의 아픔은 우리의 힘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통일은 우리 민족 전체의 가슴속에서 움터야 한다고 노래하는 것이다.

 

4연에서는 통일된 우리의 미래를 예언하고 있다. '미움의 쇠붙이'는 동족 간에 증오로 가득 찬 군사적 대결을 뜻하는 것으로, 통일이 이루어지면 동족 사이의 증오와 대결은 사라지고 새로운 화합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화자는 말하고 있다.

 

 


 

 

신동엽 시인 / 4월은 갈아엎는 달

 

 

내 고향은

강 언덕에 있었다.

해마다 봄이 오면

피어나는 가난.

지금도

흰 물 내려다보이는 언덕

무너진 토방가선

시퍼런 풀줄기 우그려넣고 있을

아, 죄 없이 눈만 큰 어린 것들.

 

미치고 싶었다.

사월이 오면

산천은 껍질을 찢고

속잎은 돋아나는데,

4월이 오면

내 가슴에도 속잎은 돋아나고 있는데,

우리네 조국에도

어느 머언 심저, 분명

새로운 속잎은 돋아오고 있는데,

 

미치고 싶었다.

4월이 오면

곰나루서 피 터진 동학의 함성.

광화문서 목 터진 4월의 승리여.

 

강산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출렁이는 네 가슴만 남겨놓고, 갈아엎었으면

이 균스러운 부패와 향락의 불야성 갈아엎었으면

갈아엎은 한강연안에다

보리를 뿌리면

비단처럼 물결칠, 아 푸른 보리밭.

 

강산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그날이 오기까지는, 4월은 갈아엎는 달.

그날이 오기까지는, 4월은 일어서는 달.

 

 


 

신동엽[申東曄, 1930.8.18 ~ 1969.4.7] 시인

1930년 충남 부여에서 출생. 전주 사범, 단국대 사학과 및 건국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大地〉가 입선. 1963년 시집『阿斯女』 간행. 1967년 서사시 「錦江」 발표. 1969년 간암으로 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