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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천상병 시인 / 청녹색 외 9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7.

천상병 시인 / 청녹색

 

 

하늘도 푸르고

바다도 푸르고

산의 나무들은 녹색이고

하느님은 청녹색을 좋아하신는가 보다.

 

청녹색은

사람의 눈에 참으로

유익한 빛깔이다.

우리는 아껴야 하리.

 

이 세상은 유익한 빛깔로

채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안타깝다.

 

 


 

 

천상병 시인 / 친구(親舊)

 

 

천가(千家)는 우리나라 성(姓)가운데서 쌍놈이다.

화산군(火山群), 천만리공(千萬里公)은 임진왜란때

이여송(李如松)과 더불어 중화로부터의 구원병이다.

 

20세기의 제2차 세계대전이라면은

미합중국의 맥아더 장군(將軍)같은 존재야.

수군통제사 이순신 제독도 못당했을 거다.

 

그 왜놈의 희로에서 1930년 1월 29일생이야.

참으로 무슨놈의 팔자출생(八字出生)일는지

그러다가 사납게도 수도 동경부 근처로 이사했다.

 

 


 

 

천상병 시인 / 친구(親舊).1

-히아신스-

 

 

섬세하다고  했어도 이리도 갸냘픈가.

사막에서는 명함도 못내 놓겠네.

수분기(水分氣)가 없는 것은 별개(別個)일거야.

 

여전스레 공기는 열기(熱氣)를 뿜어내고

다 뿜어내면 하늘까지라도 팽게칠 모양이다.

여행객(旅行客)이나 있으면 감상하여마지 않았을 텐데.

 

원시시대의 원방향(原方響)도 잊어먹었네.

이런 골치아픈 사막에 떨어지다니

원죄(原罪)야, 누구에게 신앙고백을 할까?

 

 


 

 

천상병 시인 / 친구(親舊).2

-歲月-

 

 

세월(歲月)은 흘러서 100년 가까히 됐다네.

오만불손 했던 성격도 맞다네.

죽어도 괜찮다네.

 

도령(道令)이 천국가까이 왔다네.

오면은 기꺼이 가서 대꾸하리다.

이제도 가히 그 절념시기(絶念時機)가 안온다네.

 

산복(山腹)에 정좌(靜坐)하여 두고두고 살피니

저쪽 빛깔도 구름까지도 같지가 않니

제 7의 천국이며는 얼마나 좋겠니.

 

 


 

 

천상병 시인 / 친구(親舊).3

-김치-

 

 

매일같이 먹는 김치에는 음식이 섞여든다.

생선(生鮮)도 고기도 적량(適量)껏 들어가 있으니

음식의 백화점이 따로이 없다.

 

아무리 먹어도 만복(滿腹)도 안된다.

대륙(大陸)을 통체로 자셔도 이렇게는

자양분(滋養分)이 적량(適量)이 되지 않겠다.

 

식물(植物)도 풀과 이파리니 전체나 마찬가지다.

맛도 미미천만(美味千萬)이니 딴것과 바꾸지 못한다.

우리 백의민족(白衣民族)이 시골뜨기가 아니라는

증일(證壹)이다.

 

 


 

 

천상병 시인 / 친구(親舊).4

-日曜日-

 

 

신도(信徒)는 천주교도(天主敎徒)를 말함이니

나도 위선 포함되고 전세계에는 6억인구가 넘는다.

오늘은 일요일인데 편안하게 쉬어라.

 

구름이 다소간끼었는데,

태양을 막아서 어두워진 것 같다.

아폴로는 언제나 활을 쏠려는고,

 

유년시대(幼年時代)의 황금기는 벌써 지났다.

 

전기광속(電氣光速)보다 빠른 미터로 언제 올려나

천국의 제7지방(第七地方)에 가서 기도할 때가.

 

 


 

 

천상병 시인 / 하늘위의 일기초(日記秒)1

-냇물가 植物-

 

 

냇물가 식물은 꼭 동양(東洋)의 군자와 같다네.

움직일려고 하는데 그것은 물의 흐름 때문이다.

무엇을 믿고 있는 것인지 요량할 수도 없다네.

동양의 군자들은 유교(유교)를 선봉했는데,

요것들은 유교(儒敎)라니 턱도 없을 테니,

자기들의 뿌리나 믿는 게  아닐까.

 

하여튼 바다와 육지가 섞이는 공장이다.

게도 장난삼아 왕래(往來)하겠다.

여양분있는 반식(飯食)이 없나 하고 말이다.

 

사회계급(社會階級)이니 그런 것이 있을까......

다들 평등해서 착취나 노예도 없을 게다.

군대조직단(軍隊組織團)이니 뭐니 하는 불필요한 것도.

 

 


 

 

천상병 시인 / 하늘위의 일기초(日記秒)2

-河口-

 

 

최남단인 부상항구, 다대포(多大浦)는

낙동강(洛東江) 하구(河口)요 바다의 접촉점이다.

옛날에는 해상교통사고도 더러 있었다는데......

 

저쪽 저 멀리에는 일본국이 있을 것이며

안 닿던 곳이 없지 않을까?

런던도 바닷길을 해서 연맹체(聯盟體)일까요.

 

어디로 가든지 갈 수 있고 또 갈 수도 없다오.

북극(北極)에라도 배만 있으면 가겠다나.

추위가 혹심해서 견딜 수가 없겠구나.

 

하구는 꽤 복잡다단하다.

내부지밀(內部至密)에서는 고기들의 생식 때문에 바쁘고

외면표피(外面表皮)에서는 양쪽 부유물(浮遊物)들이

논다.

 

 


 

 

천상병 시인 / 하늘위의 일기초(日記秒)3

-生鮮-

 

 

천국에 생선이 있는지 없는지 미루어 짐작하라.

고래같은 대어(大魚)는 없겠지만은 돔새끼는 있을 것이다

잡다한 추한 생선은 없으면 좋겠는데......

 

맛이 좋든 그르든 그 신기함에 환성을 지를 것이다.

대체로 맛이 좋은게 생선이니까.

요리책이나 갔다놓고 이러쿵 저러쿵 아옹다옹이다.

 

물은 벌써 준비되어 있고 끄집어 내기만 하면 되는데.

이 요리(料理)쟁이는 꼼짝도 안한다.

그저 구경만 하고 춤이나 추라는 것인가......

 

웬만하면 이젠 구경하는 것도 싫증이 난다.

견딜려니 고역(苦役)이요 악경험(惡經驗)이다.

이만하면 지옥에 가져다 냅다 버렸으면......

 

 


 

 

천상병 시인 / 허상(虛像). 2

-골짜기-

 

 

골짜기의 냇물은 왜 이리도 맑을까......

지금(至今)은 4월초(四月初)라

숱한 꽂봉우리들이 다투어 경쟁하겠네.

 

무성한 솔나무잎은 온통 푸르고

햇빛을 더욱 받으려고 발돋움한다.

같은 크기 같은 끼리인데도 말이야.

 

삼림(森林)은 냇물가에 미안하다는 듯이

그저 침묵이고 요동도 안하네.

저쪽 산비탈도 녹화(綠化)시킬 모양인가.

 

풀들도 일제히 들고 일어선다.

온존이 그윽한 진공기(眞空氣)가 맑구나.

요리조리 골짜기는 맑음에 쌓였다.

 


 

천상병 [千祥炳, 1930.1.29 ~ 1993.4.28] 시인

1930년 일본 효고현(兵庫県)에서 출생. 1949년 마산 중학 5년 재학 중 당신  담임교사이던 시인 김춘수의 주선으로 시 〈강물〉이 《문예》誌에 초회 추천. 1951년 《문예》誌에  평론  〈나는  부하고 저항 할 것이다〉를 발표하며 평론 활동 시작. 저서로는 시집으로 『주막에서』(민음사, 1979)와  『요놈! 요놈! 요 이쁜 놈!』(답게, 1991), 동화집 『나는 할아버지다. 요놈들아』(1993, 민음사) 등이 있음. 1993년 숙환으로 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