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한 시인 / 명령
사랑이 오라 하면 불로라도 물로라도 아니 가오리까 사랑이 손짓하여 부르면 험한 것을 사양하오리까? 사랑이 오오 사랑이 나를 찾는다면 마중하러 먼 길을 아니 가오리까? 만나거든 다시는 떠나지 않도록 사랑이여 나더러 오라 하소서. 발벗은 채로 뛰어 가오리다. 사랑이여 나더러 빨리 오라 하소서. 모든 것 버리고 달려 가오리다. 사랑이여 나를 따라오라 하소서 땅 끝까지 가오리다. 그 명령이 그런 힘을 나에게 줍니다.
*이 시에서 말하는 "사랑"은 조국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겠다. 일찌기 타고르가 한국에 주는 시인 '동방의 등불'을 번역한 일도 있는 이 시인에게서 "사랑"을 조국으로 해석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주요한 시인 / 샘물이 혼자서
샘물이 혼자서 춤추며 간다. 산골짜기 돌 틈으로
샘물이 혼자서 웃으며 간다. 험한 산길 꽃 사이로
하늘은 맑은데 즐거운 그 소리 산과 들에 올리운다. 아름다운 새벽, 조선문단사, 1924
* '학우' 창간호(1919.1) 수록. '학우'는 일본 동경 한국인 유학생들의 기관지였었다.
주요한 시인 / 전원송(田園訟)
전원으로 오게, 전원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쁨을 가져 오나니 익은 열매와 붉은 잎사귀 가을 풍성은 지금이 한창일세.
아아 도회의 핏줄 선 눈을 버리고 수그러진 어깨와 가쁜 호흡과 아우성치는 고독의 거리를 버리고 푸른 봉우리 솟아오른 전원으로 오게 오게.
달이 서러운 밭도랑을 희게 비치고 얼어 붙은 강물과 다리와 어선 위에 눈은 내려서 녹고 또 꽃 필 적이 우리들이 깊이 또 고요히 묵상할 때일세.
전원으로 오게, 건강의 전원으로. 인공과 암흑과 시기와 잔혹의 도회 잠잘 줄 모르는 도회 달과 별을 향하여 어리석은 반항을 하는 도회를 떠나오게.
노래는 들에 가득히 산에 울려 나오고 향기와 빛깔은 산에서 들로 퍼져 간다. 아름다운 봄! 양지에 보드랍게 풀린 흙덩이를 껴안고 입맞추고 싶은 봄.
그러나 보라 도회는 피 빠는 박쥐가 깃들인 곳 흉한 강철의 신 앞에 사람 사람이 피와 살과 자녀까지 바쳐야 하는 되회는 문명의 막다른 골, 무덤.
전원으로! 여기 끊임없는 샘물이 솟네. 여기 영원한 새로움이 흘러나네. 더운 태양과 강건한 대지의 자라나는 여름의 전원으로!
아아 그 때 새 예언자의 외치는 소리가 봉우리와 골짜기를 크게 울리리니 반역자가 인류의 유업을 차지하리니 위대한 리듬의 전원으로 오게 오게. 삼인시가집(三人詩歌集), 삼천리사, 1929
* 시인이 처해 있는 암담한 현실에 대한 도피의 감정이 다분히 깃들여 있는 작품이다. 중국의 전원 시인 도연명이나 영국의 자연 시인 워즈워드를 의식하고 있는 듯한 전원시이다. 주제는 전원예찬.
|
'◇ 시인과 시(근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윤동주 시인 / 바람이 불어 외 2편 (0) | 2019.06.11 |
---|---|
주요한 시인 / 아침 황포강(黃浦江)가에서 외 2편 (0) | 2019.06.11 |
홍사용 시인 / 이한(離恨) (0) | 2019.06.10 |
김억 시인 / 물레 외 2편 (0) | 2019.06.09 |
홍사용 시인 / 고초 당초 맵다한들 외 2편 (0) | 2019.06.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