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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억 시인 / 물레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9.

김억 시인 / 물레

 

 

물레나 바퀴는

실실이 시르렁

어제도 오늘도 흥겨이 돌아도

사람의 산 생(生)은 시름에 돈다오,

 

물레나 바퀴는

실실이 시르렁

외마디 겹마리 실마리 풀려도

꿈 같은 세상은 가두새 얽힌다.

 

물레나 바퀴는

실실이 시르렁

언제는 실마리 감자던 도련님

인제는 못 풀어 날 잡고 운다오.

 

물레나 바퀴는

실실이 시르렁

원수의 도련님 실마리 풀어라

뭇 풀 걸 왜 감고 날다려 풀라나.


안서시집, 한성도서주식회사, 1929

 

*안서는 생전에 약 300여 편의 시를 발표하였다. 안서의 민요조 서정시는 김소월, 홍사용, 김동환 등의 호응으로 한때 한국 시의 주류를 이루었던 때가 있었다.

 

 


 

 

김억 시인 / 보슬비

 

 

浦口十里에 보슬보슬

쉬지 않고 내리는 비는

긴 여름날의 한나절을

모래알만 울려 놓았소.

 

기다려선 안 오다가도

설은 날이면 보슬보슬

만나도 못코 떠나버린

그 사람의 눈물이던가.

 

설은 날이면 보슬보슬

魚泳島라 갈매기떼도

지차귀가 축축히 젖어

너흘너흘 날아를 들고.

 

자취없는 물길 三百離

배를 타면 어데를 가노.

南浦사공 이내 廊君님

어느 곳을 지금 헤매노.

 

 


 

 

김억 시인 / 사공의 아내

 

 

모래밭 스며드는 하얀 이 물은

넓은 바다 동해를 모두 휘돈 물.

 

저편은 원산 항구 이편은 장전(長箭)

고기잡이 가장님 들고나는 길

 

모래밭 사록사록 스며드는 물

몇 번이나 내 손을 씻고 스친고.

 

몇 번이나 이 물에 어리었을가?

들고나며 우리 님 검은 그 얼굴.

 

*'시원'(1935.2) 수록. "해변 소곡"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주제는 바다의 찬미. 소재는 바닷물. 7.5조의 정형시. 민요풍으로 읊은 낭만적인 시이다.

 


 

김억(金億) 시인 [1893.11.30~?]

최초의 번역 시집 《오뇌의 무도》를 낸 시인. 주요저서 : 《오뇌의 무도》 《해파리의 노래》 《꽃다발》 《망우초》 호: 안서(岸曙). 본명: 희권(熙權). 평북 정주(定州) 출생. 오산중학(五山中學)을 졸업하고 일본 게이오의숙[慶應義塾] 문과를 중퇴하였다. 모교인 오산중학과 평양 숭덕학교(崇德學校)에서 교편을 잡고 《동아일보》와 경성방송국에서도 근무하였다. 1941년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부 문화위원, 조선문인협회 간사, 조선문인보국회

 평의원 등을 지내면서 친일활동을 하였다. 8 ·15광복 후에는 출판사에 몸담고 있다가 6 ·25전쟁 때 납북되었다. 20세 때인 1912년부터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고, 특히 투르게네프 ·베를렌 ·구르몽 등의 시를 번역 ·소개하여 한국 시단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최초의 번역 시집 《오뇌의 무도》는 베를렌 ·보들레르 등의 시를 번역한 것으로서 한국 시단에 상징적 ·퇴폐적 경향을 낳게 하는 촉매적 역할을 하였다. 또한 타고르의 《기탄잘리》 《원정(園丁)》 《신월(新月)》 등을 번역하였고, 그 밖에 A.시몬즈 시집 《잃어버린 진주》와 한시의 번역 시집인 《꽃다발》 《망우초》 《중국 여류시선》 등이 있다. 1923년에 간행된 그의 시집 《해파리의 노래》는 근대 최초의 개인 시집으로서 인생과 자연을 7 ·4조, 4 ·4조 등의 민요조(民謠調) 형식으로 담담하게 노래한 것이 특징이다. 한편, 에스페란토의 선구적 연구가로서 1920년 에스페란토 보급을 위한 상설 강습소를 만들었는데, 한성도서에서 간행한 《에스페란토 단기 강좌》(1932)는 한국어로 된 최초의 에스페란토 입문서이다. 그는 특히 오산학교에서 김소월(金素月)을 가르쳐 그를 시단에 소개한 공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