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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오일도 시인 / 눈이여! 어서 내려다오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8.

오일도 시인 / 눈이여! 어서 내려다오

 

 

눈이여! 어서 내려다오.

저 황막한 벌판을 희게 덮게 하오.

 

차디찬 서리의 독배(毒杯)에 입술 터지고

무자비한 바람 때 없이 지내는 잔 칸질에 피투성이 낙엽이 가득 쌓인

대지의 젖가슴 포-트립 빛의 상처를.

 

눈이여! 어서 내려 다오

저어 앙상한 앞 산을 고이 덮어 다오.

 

사해(死骸)의 한지(寒枝) 위에

까마귀 운다

금수(錦繡) 의 옷과 청춘의 육체를 다 빼앗기고

한위(寒威)에 쭈그리는 검은 얼굴들.

 

눈이여! 퍽퍽 내려 다오

태양이 또 그위에 빛나리라.

 

가슴 아픈 옛 기억을 묻고 보내고

싸늘한 현실을 잊고

성역(聖域)의 새 아침 흰 정토(淨土)위에

내 영혼 쉬이려는 희원(希願) 이오니.

 

 


 

 

오일도 시인 / 노변(爐邊)의 애가

 

 

밤새껏 저 바람 하늘에 높으니

뒷산에 우수수 감나무 잎 하나도 안 남았겠다.

 

계절이 조락(凋落), 잎잎마다 새빨간 정열의

피를 마을 아이 다 모여서 무난히 밟겠구나.

 

시간조차 약속할 수 없는 오오 다의 파종(破種)아

울적의 야공을 이대로 묵수(默守)하려느냐?

 

구름 끝 열규(熱叫) 하던 기러기의 한줄기 울음도

멀리 사라졌다. 푸른 나라로 푸른 나라로-

고요한 노변에 홀로 눈 감으니

향수의 안개비 자욱히 앞을 적시네.

 

꿈속같이 아득한 옛날, 오 나의 사랑아

너의 유방(乳房)에서 추방된지 이미 오래라.

 

거친 비바람 먼 사막의 길을

숨가쁘게 허덕이며 내 심장은 찢어졌다.

가슴에 안은 칼 녹스는 그대로

오오 노방(路傍)의 죽음을 어이 함을 것이냐!

 

말없는 냉희(冷灰) 위에 질서없이 글자를 따라

모두 생각이 떳다---잠겼다---또----떴다----

 

----앞으로 흰눈이 펄펄 산야(山野)에 내리리라

----앞으로 해는 또 저무리라.

 

 


 

 

오일도 시인 / 내 연인이여! 가까이 오렴

 

 

내 연인이여! 좀더 가까이 오렴

지금은 애수의 가을, 가을도 이미 깊었나니.

 

검은 밤 무너진 옛 성너머로

우수수 북성(北城) 바람이 우리를 덮어 온다.

 

나비 날개처럼 양상한 네 적삼

얼마나 차냐! 왜 떠느냐? 오오 매 무서워라.

 

내 연인이여! 좀더 가까이 오렴

지금은 조락의 가을. 때는 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

 

한여름 영화를 자랑하는 나뭇잎도

어느덧 낙엽이 되어 저-성뚝 밑에 홀쩍거린다.

 

잎사귀 같은 우리 인생 한번 바람이 흩어 가면

어느 강산 또 언제 만나리오.

 

좀더 가까이 좀더 가까이 오렴

한 발자치 그대를 두고도 내 마음 먼 듯해 미치겠노라.

 

전신의 피란 피 열화같이 가슴에 올라

오오 이 밤 새기 전 나는 타고야 말리니.

 

깜-한 네 눈이 무엇을 생각하느냐.

 

좀더 가까이 좀더 가까이 오렴

오는 밤엔 이상하게도 마을 개 하나 짖들 않는다.

 

어두운 이 성뚝 길을 행여나 누가 걸어오랴

성 위에 한없이 짙어가는 밤-이 한밤은 오직

우리의 전유(專有) 이오니.

 

네 팔이 내 목을 안아라. 우리는 두 청춘, 청춘

아! 제발 길어 다오.

 

 


 

 

오일도 시인 / 누른 포도잎

 

 

검젖은 뜰 위에

하나 둘....

말없이 내리는 누른 포도잎.

 

오늘도 나는 비 들고

누른 잎을 울며 쓰나니

 

언제나 이 비극 끝이 나려나!

 

검젖은 뜰 위에

하나 둘......

말없이 내리는 누른 포도잎.

 

 


 

 

오일도 시인 / 내 소녀

 

 

빈 가지에 바구니 걸어 놓고

내 소녀 어디 갔느뇨.

 

........................

 

박사(薄紗)의 아지랭이

오늘고 가지 앞에 아른거린다.

 


 

 

오일도(吳一島) 시인

본관은 낙안(樂安). 본명은 오희병(吳熙秉). 아호는 일도. 경상북도 영양 출신. 14세까지 향리의 사숙(私塾)에서 한문 공부를 한 뒤, 1915년 15세에 결혼. 그 뒤 1918년 영양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상경,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京城第一高等普通學校)에 입학하였으나 졸업하지 않았다. 1922년 일본 도쿄로 건너가 강습소에서 수학한 다음 릿쿄대학[立敎大學] 철학부에 입학하여 1929년 졸업. 귀국 후 1년 동안 덕성여자중고등학교의 전신인 근화학교(槿花學校)에서 무보수 교사로 근무하다 1935년 2월

 시 전문잡지 『시원(詩苑)』을 창간하였다. 이 잡지는 1935년 12월 5호를 내고 발행이 중단되었다. 그의 작품 활동은 1925년 『조선문단(朝鮮文壇)』 4호에 시 「한가람백사장에서」를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창작 활동을 전개한 것은 『시원』을 창간하면서부터였는데, 여기에 「노변(爐邊)의 애가(哀歌)」·「눈이여! 어서 내려다오」·「창을 남쪽으로」·「누른 포도잎」·「벽서(壁書)」·「내 연인이여!」 등을 발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