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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윤동주 시인 / 바람이 불어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11.

윤동주 시인 / 바람이 불어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理由)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理由)가 없을까,"

 

단 한 여자(女子)를 사랑한 일도 없다.

時代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정음사, 1948

 

 


 

 

윤동주 시인 / 십자가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敎會堂) 꼭대기

십자가(十字架)에 걸리었습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왔던 사나이,

행복(幸福)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十字架)가 허락(許諾)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정음사, 1948

 

 


 

 

윤동주 시인 / 새벽이 올 때 까지

 

 

다들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검은 옷을 입히시오.

 

다들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흰 옷을 입히시오.

 

그리고 한 침대에

가즈런히 잠을 재우시오.

 

다들 울거들랑

젖을 먹이시오.

 

이제 새벽이 오면

나팔소리 들려올 게외다.

 

 


 

윤동주 [尹東柱, 1917.12.30 ~ 1945.2.16] 시인

北間島(븍간도)의 명동촌서 출생. 아명은 해환(海換). 1936년 광명학원을 거쳐 1941년 연희전문 문과 졸업. 일본 릿쿄대학과 도시샤대학에서 수학. 1943년 귀향 직전 항일운동 혐의로 일경에 검거되어 2년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에서 옥사.  작품으로 『서시』,『자화상』,『별 헤는 밤』,『또다른 고향』, 『쉽게 쓰여진 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등이 있고,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 1948)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