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근대)

주요한 시인 / 명령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10.

주요한 시인 / 명령

 

 

사랑이 오라 하면

불로라도 물로라도 아니 가오리까

사랑이 손짓하여 부르면

험한 것을 사양하오리까?

사랑이 오오 사랑이 나를 찾는다면

마중하러 먼 길을 아니 가오리까?

만나거든 다시는 떠나지 않도록

사랑이여 나더러 오라 하소서.

발벗은 채로 뛰어 가오리다.

사랑이여 나더러 빨리 오라 하소서.

모든 것 버리고 달려 가오리다.

사랑이여 나를 따라오라 하소서

땅 끝까지 가오리다.

그 명령이 그런 힘을 나에게 줍니다.

 

*이 시에서 말하는 "사랑"은 조국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겠다. 일찌기 타고르가 한국에 주는 시인 '동방의 등불'을 번역한 일도 있는 이 시인에게서 "사랑"을 조국으로 해석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주요한 시인 / 샘물이 혼자서

 

 

샘물이 혼자서

춤추며 간다.

산골짜기 돌 틈으로

 

샘물이 혼자서

웃으며 간다.

험한 산길 꽃 사이로

 

하늘은 맑은데

즐거운 그 소리

산과 들에 올리운다.


아름다운 새벽, 조선문단사, 1924

 

* '학우' 창간호(1919.1) 수록. '학우'는 일본 동경 한국인 유학생들의 기관지였었다.

 

 


 

 

주요한 시인 / 전원송(田園訟)

 

 

전원으로 오게, 전원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쁨을 가져 오나니

익은 열매와 붉은 잎사귀

가을 풍성은 지금이 한창일세.

 

아아 도회의 핏줄 선 눈을 버리고

수그러진 어깨와 가쁜 호흡과

아우성치는 고독의 거리를 버리고

푸른 봉우리 솟아오른 전원으로 오게 오게.

 

달이 서러운 밭도랑을 희게 비치고

얼어 붙은 강물과 다리와 어선 위에

눈은 내려서 녹고 또 꽃 필 적이

우리들이 깊이 또 고요히 묵상할 때일세.

 

전원으로 오게, 건강의 전원으로.

인공과 암흑과 시기와 잔혹의 도회

잠잘 줄 모르는 도회 달과 별을 향하여

어리석은 반항을 하는 도회를 떠나오게.

 

노래는 들에 가득히 산에 울려 나오고

향기와 빛깔은 산에서 들로 퍼져 간다.

아름다운 봄! 양지에 보드랍게 풀린

흙덩이를 껴안고 입맞추고 싶은 봄.

 

그러나 보라 도회는 피 빠는 박쥐가 깃들인 곳

흉한 강철의 신 앞에 사람 사람이

피와 살과 자녀까지 바쳐야 하는

되회는 문명의 막다른 골, 무덤.

 

전원으로! 여기 끊임없는 샘물이 솟네.

여기 영원한 새로움이 흘러나네.

더운 태양과 강건한 대지의

자라나는 여름의 전원으로!

 

아아 그 때 새 예언자의 외치는 소리가

봉우리와 골짜기를 크게 울리리니

반역자가 인류의 유업을 차지하리니

위대한 리듬의 전원으로 오게 오게.


삼인시가집(三人詩歌集), 삼천리사, 1929

 

* 시인이 처해 있는 암담한 현실에 대한 도피의 감정이 다분히 깃들여 있는 작품이다. 중국의 전원 시인 도연명이나 영국의 자연 시인 워즈워드를 의식하고 있는 듯한 전원시이다. 주제는 전원예찬.

 

 


 

주요한 [朱耀翰, 1900.10.14 ~ 1979.11.17] 시인

1900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목사 주공삼(朱孔三)의 8남매 중 맏아들로 출생. 시인 ∙ 언론인 ∙ 정치인. 호는 송아(頌兒). 필명은 벌꽃 ∙ 낙양(落陽) 등. 소설가 주요섭(朱耀燮)의 친형. 1912년 평양숭덕소학교, 1918년 일본 메이지학원(明治學院) 중등부 졸업. 1919년 동경의 제1고등학교 졸업. 1925년 상해(上海) 후장대학 졸업. 대학 재학시 상해의 독립신문 기자로 활동.

1919년 1월에 간행된 《학우》 창간호에 '에튜으트'라는 큰 제목으로 창작시 〈시내〉 ∙ 〈봄〉 ∙ 〈눈〉 ∙ 〈이야기〉 ∙ 〈기억〉의 5편을 발표하며 시작(詩作)활동 시작. 시집으로 『아름다운 새벽』 외에,  『3인시가집(三人詩歌集)』(三千里社, 1929),  『봉사꽃』(世宗書院, 1930) 등이 있고, 일반 논저로는  『자유의 구름다리』(泰成社, 1959),  『부흥논의』(大成文化社, 1963),  『안도산전서(安島山全書)』(三中堂, 1963) 등이 있음. 동아일보사와 조선일보사 편집국장 및 논설위원 및 화신상회(和信商會)의 중역 및 대한상공회의소 특별위원, 대한무역협회 회장, 국제문제연구소장, 민주당민의원의원 초선 및 재선, 4 ∙ 19 당시는 부흥부장관 및 상공부장관, 경제과학심의회 위원, 대한일보사 사장, 대한해운공사 대표이사 역임.1979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