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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윤동주 시인 / 굴뚝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12.

윤동주 시인 / 굴뚝

 

 

산골짜기 오막살이 낮은 굴뚝엔

몽기몽기 웬 연기 대낮에 솟나

 

감자를 굽는 게지, 총각 애들이

깜박깜박 검은 눈이 모여 앉아서

입술에 꺼멓게 숯을 바르고

옛 이야기 한 거리에 감자 하나씩

 

산골짜기 오막살이 낮은 굴뚝엔

살랑살랑 솟아나네, 감자 굽는 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정음사, 1948

 

 


 

 

윤동주 시인 / 참회록(懺悔錄)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ㅡ만 이십 사 년 일 개월(滿二十四年一個月)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 한다.

ㅡ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정음사, 1948

 

 


 

윤동주 [尹東柱, 1917.12.30 ~ 1945.2.16] 시인

北間島(븍간도)의 명동촌서 출생. 아명은 해환(海換). 1936년 광명학원을 거쳐 1941년 연희전문 문과 졸업. 일본 릿쿄대학과 도시샤대학에서 수학. 1943년 귀향 직전 항일운동 혐의로 일경에 검거되어 2년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에서 옥사.  작품으로 『서시』,『자화상』,『별 헤는 밤』,『또다른 고향』, 『쉽게 쓰여진 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등이 있고,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 1948)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