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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주요한 시인 / 남국의 눈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13.

주요한 시인 / 남국의 눈

 

 

푸른 나뭇잎에 내려 쌓이는

남국의 눈이 옵니다.

 

오늘 밤을 못 다 가서 사라질 것을

설운 꿈같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을

 

푸른 가지 위에 피는 흰 꽃을

설운 꿈 같은 남국의 눈입니다.

 

젊은 가슴에 당치도 않은

남국의 때 아닌 흰눈입니다.


삼인시가집(三人詩歌集), 삼천리사, 1929

 

* 주요한의 문학사상 업적은 근대시다운 근대시를 창시했다는 사실이다. 때를 벗지 못한 우리나라 시에 그는 하나의 전환기를 만들어 놓았다. 그의 작품에는 항상 맑은 빛이 흐르고 지성의 정서가 흐른다.

 

 


 

 

주요한 시인 / 아기의 꿈

 

 

벌써 어디서 다듬이 소리가 들린다.

별이 아직 하나밖에 아니 뵈는데,

달빛에 노니는 강물에 목욕하러

색시들이 강으로 간다.

 

바람이 간다, 아기의 졸리는 머릿속으로,

수수밭에 속삭이는 소리를

아기는 알아 듣고 웃는다.

 

아기는 곡조 모를 노래로 대답한다.

어머님이 아기 잠을 재우려 할 적에.

 

어머님의 사랑하는 아기는

이제 곧 잠들겠읍니다.

 

잠들어서 이불에 가만히 누인 뒤에,

몰래 일어나 아기는 나가겠읍니다.

나가서 저기 꿈 같은 흰 들길에서

그이를 만나 어머님 이야기를 하겠읍니다.

 

그러면, 어머님은 아기가 잘도 잔다 하시고,

다듬질할 옷을 풀밭에 널러

아기의 웃는 얼굴에 입맞추고 나가시겠지요.

그럴 적에 아기는 앞강을 날아 건너,

그이 계신 곳에 가 보겠읍니다.

가서 그이에게 어머님 이야기를 하겠읍니다.


삼인시가집(三人詩歌集), 삼천리사, 1929

 

* '영대'3호 (1924.10) 수록. 주제는 조국의 원초적 얼에 대한 동경. 꿈 속에 나오는 "아기의 아기"는 건강한 생명의 얼, 또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한 겨레의 얼. "어머님"은 "그이"와의 관계에서 상징될 때 "수난을 겪는 조국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동화적인 세계를 빌어 시인의 상상력을 표현한 서정시. 타고르적인 수법이 보인다.

 

 


 

주요한 朱耀翰 [1900.10.14~1979]

 

호: 송아(頌兒). 평남 평양(平壤) 출생. 초등학교 졸업 후 도일, 메이지학원[明治學院] 중등부와 도쿄[東京] 제1고등학교를 거쳐 3 ·1운동 후 상하이[上海]로 망명, 후장[嫉江]대학을 졸업하였다. 귀국 후 동아일보사와 조선일보사 편집국장을 지냈고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실업계에 투신하여 화신상회(和信商會) 중역으로 있었다.

 

8 ·15광복 후에는 흥사단(興士團)에 관계하는 한편 언론계에 진출하여 정치 ·경제부문의 논평을 많이 썼다. 국회의원을 거쳐 4 ·19혁명 후 장면 내각 때는 부흥부장관 ·상공부장관을 역임했고 5 ·16군사정변 후에는 경제과학심의회 위원 ·대한해운공사 사장을 지냈다.

 

메이지학원 재학중에 문학에 뜻을 두고 학우들과 회람지를 발행하는 한편 일본 시인 가와지 류코[川路柳虹]의 문하에서 근대시를 공부하다가 1919년 《창조(創造)》 동인에 참가함으로써 문단에 진출했다. 1919년 《창조》 1호에 발표한 시 〈불놀이〉는 서유럽적인 형태의 최초의 근대시로 평가된다. 그 후 계속 〈아침처녀〉 〈빗소리〉 등, 낭만적인 서정시를 발표하였다.

 

1924년에 시집 《아름다운 새벽》을 간행했고, 그 밖에 이광수(李光洙) ·김동환(金東煥)과 함께 펴낸 《3인시가집(三人詩歌集)》(1929)이 있다. 한편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시부 회장, 1945년 조선언론보국회 참여 등 친일 문필활동을 하였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주요한 [朱耀翰, 1900.10.14 ~ 1979.11.17] 시인

1900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목사 주공삼(朱孔三)의 8남매 중 맏아들로 출생. 시인 ∙ 언론인 ∙ 정치인. 호는 송아(頌兒). 필명은 벌꽃 ∙ 낙양(落陽) 등. 소설가 주요섭(朱耀燮)의 친형. 1912년 평양숭덕소학교, 1918년 일본 메이지학원(明治學院) 중등부 졸업. 1919년 동경의 제1고등학교 졸업. 1925년 상해(上海) 후장대학 졸업. 대학 재학시 상해의 독립신문 기자로 활동.

1919년 1월에 간행된 《학우》 창간호에 '에튜으트'라는 큰 제목으로 창작시 〈시내〉 ∙ 〈봄〉 ∙ 〈눈〉 ∙ 〈이야기〉 ∙ 〈기억〉의 5편을 발표하며 시작(詩作)활동 시작. 시집으로 『아름다운 새벽』 외에,  『3인시가집(三人詩歌集)』(三千里社, 1929),  『봉사꽃』(世宗書院, 1930) 등이 있고, 일반 논저로는  『자유의 구름다리』(泰成社, 1959),  『부흥논의』(大成文化社, 1963),  『안도산전서(安島山全書)』(三中堂, 1963) 등이 있음. 동아일보사와 조선일보사 편집국장 및 논설위원 및 화신상회(和信商會)의 중역 및 대한상공회의소 특별위원, 대한무역협회 회장, 국제문제연구소장, 민주당민의원의원 초선 및 재선, 4 ∙ 19 당시는 부흥부장관 및 상공부장관, 경제과학심의회 위원, 대한일보사 사장, 대한해운공사 대표이사 역임.1979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