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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춘원 이광수 / 육바라밀 외 6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13.

춘원 이광수 / 육바라밀

 

 

남에게는 아까운 것이 없이

무엇이나 바치고 싶은 이 마음

거기서 나는 보시를 배웠노라

 

님께 보이고자 애써 깨끗이

단장하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지계를 배웠노라

 

님이 주시는 것이면 때림이나 꾸지람이나

기쁘게 받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인욕을 배웠노라

 

자나깨나 쉴 사이 없이

임을 그리워하고 임 곁으로만 도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정진을 배웠노라

 

천한 하고 많은 사람 중에

오직 임만을 사모하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선정을 배웠노라

 

내가 임의 품에 안길 때에

기쁨도 슬픔도 임과 나의 존재도 잊을 때에

거기서 나는 지혜를 배웠노라

 

인제 알았노라 임은 이 몸에

짐짓 애인의 몸을 나투신 부처님이시라고..

 

 


 

 

춘원 이광수 / 서울로 간다는 소

 

 

깎아 세운 듯한 삼방 고개로

누런 소들이 몰리어 오른다.

꾸부러진 두 뿔을 들먹이고

가는 꼬리를 두르면서 간다.

 

움머 움머 하고 연해 고개를

뒤로 돌릴 때에 발을 헛 짚어

무릎을 꿇었다가 무거운 몸을

한 걸음 올리곤 또 돌려 움머.

 

갈모 쓰고 채찍 든 소장사야

산길이 험하여 운다고 마라.

떼어 두고 온 젖먹이 송아지

눈에 아른거려 우는 줄 알라.

 

삼방 고개 넘어 세포 검불령

길은 끝없이 서울에 닿았네.

사람은 이 길로 다시 올망정

새끼 둔 고산 땅, 소는 못 오네.

 

안변 고산의 넓은 저 벌은

대대로 네 갈던 옛 터로구나.

멍에에 벗겨진 등의 쓰림은

지고 갈 마지막 값이로구나.

 

'춘원 시가집'(1940) 수록.

 

* 원시 앞에 "삼방 약수터를 매일 조조(早朝)면 십여 척, 수십 척의 소가 지나간다. 흔히 갈모 쓴 사람들이 소를 몰아 천진봉 고개 절벽으로 올라간다"고 적혀 있다. 춘원이 요양차 석왕사에 머물러 있을 때 얻은 시. 주제는 소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의 정. 소에 대한 예찬은 춘원의 수필 '우덕송'에도 나타나 있다.

 

 


 

 

춘원 이광수 / 노래

 

 

나는 노래를 부르네.

끝없는 슬픈 노래를 부르네.

천지가 모두 고요한

한밤중에 내 홀로 깨어 있어

목을 놓아 끝없는 노래를 부르네.

 

노래는 떠 흩어지네.

흐르는 바람결을 타고 흩어지네.

새는 항아리에 물을 채우려고

길어다 붓고 또 딜어다 붓는

여인 모양으로 나는 노래를 부르네.

 

나는 귀를 기울이네.

한 노래가 끝날 때마다 귀를 기울이네.

산에서나, 들에서나, 어느 바다에서나

행여나 화답이 오나 하고 귀를 기울이네.

그리고는 또 끝없는 내 노래를 부르네.

 

* 시인이 노래 부르고 있는 대상은 예술일 수도 있고 아니면 조국이나 겨레일 수도 있다. 그렇게 본다면 주제는 조국 광복에 대한 그리움이라 할 수 있다.

 

 


 

 

춘원 이광수 / 임

 

 

산 넘어 또 산 넘어 임을 꼭 뵈옵과저

넘은 산이 백이언만 넘을 산이 천(千)가 만(萬)가

두어라 억이요 조(兆)라도 넘어 볼까 하노라.

 

* '임'은 한용운의 '임'이나 마찬가지로 종교적 대상일 수도 있고 조국일 수도 있다.

 

 


 

 

춘원 이광수 / 절지

 

 

꺽인 나뭇가지

병에 꽂혀서

꽃 피고 잎 피네

 

뿌리 끊인 줄을

잊음 아니나

맺힌 맘 못 풀어서라

 

맺힌 봉오리는

피고야 마네

꺽은 맘이길래

 

* 춘원은 친일파 행위로 해서 조국이 광복된 후 민족의 지탄을 받은 일이 있었다. 이 시는 그 당시의 심정을 노래한 것이다. 제목 '절지'는 꺾인 나뭇가지란 뜻이다. 1949년도 작품.

 

 


 

 

춘원 이광수 / 붓 한 자루

 

 

붓 한 자루

나와 일생을 같이 하랸다.

 

무거운 은혜

인생에서 받은 갖가지 은혜,

어찌나 갚을지

무엇해서 갚을지 망연해도

 

쓰린 가슴을

부둠고 가는 나그네 무리

쉬어나 가게

내 하는 이야기를 듣고나 가게.

 

붓 한 자루여

우리는 이야기나 써볼 까이나.

 

* '조선 문단'(1925.2) 수록. 춘원의 문학적 태도를 직접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3연과 4연에는 민족주의에 입각한 춘원의 계몽적 문학의 입장이 잘 나타나 있다.

 

 


 

 

춘원 이광수 / 불에 타는 벌레

 

 

하루 살다 죽는다는 하루살이도

그 하루 무사히 살기 어려워

무엇이 애타노 무엇을 구하노

쉴 새 없이 헤매다 거미줄에 걸려

 

불빛에 모여드는 여름 밤 나비들

광명이 그리워선가 따슨 거 찾아선가

기뻐선가 괴로와선가 싸고싸고 돌다가

불 속에 몸 던져 타 버리는 그들.

 

* 춘원의 문학 작품은 민족주의에 입각한 계몽적 입장이었다. 그는 뒷날 역사에 오점을 남기기는 했으나, 줄기차게 추구한 것은 조국 광복에 대한 염원이었다.

 

 


 

 

 춘원 이광수

1892, 평북 정주 출생-1950. 10. 25, 자강도 강계에서 사망. 아명은 보경. 호는 춘원. 소설가∙문학평론가. 한국근대문학의 선구자로, 소설 외에도 시가·평론·수필 등 전영역에 걸친 집필을 했다. 대표작으로 <무정>, <유정>, <흙>이 있다.

 


 

 

이광수(李光洙) 1892~1950. 10. 25

 

호 춘원(春園). 평안북도 정주(定州) 출생. 소작농 가정에 태어나 1902년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후 동학(東學)에 들어가 서기(書記)가 되었으나 관헌의 탄압이 심해지자 1904년 상경하였다. 이듬해 친일단체 일진회(一進會)의 추천으로 도일, 메이지[明治]학원에 편입하여 공부하면서 소년회(少年會)를 조직하고 회람지 《소년》을 발행하는 한편 시와 평론 등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10년 동교를 졸업하고 일시 귀국하여 오산학교(五山學校)에서 교편을 잡다가 재차 도일, 와세다[早稻田]대학 철학과에 입학, 1917년 1월 1일부터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 《무정(無情)》을 《매일신보(每日申報)》에 연재하여 소설문학의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였다. 1919년 도쿄[東京] 유학생의 2·8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후 상하이[上海]로 망명, 임시정부에 참가하여 독립신문사 사장을 역임했다.

 

1921년 4월 귀국하여 허영숙(許英肅)과 결혼, 1923년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편집국장을 지내고, 1933년 《조선일보》 부사장을 거치는 등 언론계에서 활약하면서 《재생(再生)》 《마의태자(麻衣太子)》 《단종애사(端宗哀史)》 《흙》 등 많은 작품을 썼다. 1937년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반 년 만에 병보석되었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인 친일 행위로 기울어져 1939년에는 친일어용단체인 조선문인협회(朝鮮文人協會) 회장이 되었으며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라고 창씨개명을 하였다.

 

8·15광복 후 반민법으로 구속되었다가 병보석으로 출감했으나 6·25전쟁 때 납북되었다. 그간 생사불명이다가 1950년 만포(滿浦)에서 병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 밖의 작품에 《윤광호(尹光浩)》 등의 단편과 《이차돈(異次頓)의 사(死)》 《사랑》 《원효대사》 《유정》 등 장편, 그리고 수많은 논문과 시편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