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김근열 시인 / 커서

by 파스칼바이런 2019. 7. 27.

김근열 시인 / 커서

 

 

1.

 

지붕에서 빛나는 눈이 처마의 한곳에서 뚝뚝 빛이 흘러내리고 있다

 

바닥으로 떨어진 물빛들은 고랑을 타고 어느 곳으로 흘러가는지 보이지 않았다

 

발자국 하나 없는 마당은 아직도 쌓인 눈으로 눈이 부셨다

 

2.

 

벽돌이 한 장 한 장이 쌓여지고 있다

 

아버지가 막노동현장에서 쌓아 올리신 것처럼 쌓고 있다 바쁘게 쉼 없이 올려놓는 벽돌

 

당신이 칠십 평생 하셨던 것처럼

 

벽돌위에 벽돌이 그 벽돌위에 또 벽돌을 쌓고 있다 헛것처럼

 

3.

 

외할머니 댁에 가는 길

 

까까머리 아이는 오늘도 어김없이 개울물 앞에 한나절이나 서있다

 

또래아이들은 잘도 건너 오고가는데 징검돌을 건너뛰기가 망설여지는 것이다

 

돌 사이 그 반짝 반짝거리는 빛 속으로 순간 사라질까봐

 

매번 징검돌 앞에만 서면 머릿속이 백지상태가 되는 것이다

 

4.

 

컴퓨터모니터 백지는 내가 걷기에는 너무 넓다

 

속은 또 얼마나 깊을까하고 머리통을 가운데에 푹 쑤셔 넣고 보니

 

툇마루에 앉아 할머니가 맷돌에 콩알을 넣으며 돌리고 계셨다

 

한복 입으신 모습이 참으로 고우셨다 멀리서도 흰 머리카락이 반짝거렸다

 

마당에서 물끄러미 보는 나를 향해 할머니가 애기처럼 웃으셨다,

 

라고 썼다가 앉아계신 모습이 빛 부셔 눈이 아파 눈물이 났다, 라고 고쳐 썼다

 

웹진 『시인광장』 2019년 5월호 발표

 

 


 

김근열 시인

2012년《영남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콜라병속에는 개구리가 산다』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