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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송연숙 시인 / 내재율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7. 27.

송연숙 시인 / 내재율

 

 

  양동이를 뒤집어쓰고

  발성연습을 해보았다

  목소리에는 신을 키우는 메아리가 있고

  노래 속에는 귀가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노래가 종이처럼 구겨지는 것을

  귀는 몰래 듣고 있었다

 

  양동이는 요란한 소리를 품고

  가을 내내 새들을 쫓았다

  양동이에서 찌그러진 음표들이 쏟아질 때마다

  새들은 마을 끝까지 휘어졌다 제자리로 돌아오곤 하였고

  양동이 속에는 여전히 새들이 남아 있었다

 

  봉인된 동종(銅鐘) 속 아이는

  뚝, 뚝, 그쳐라, 울음을 참고 있다

  바닥까지 내려가야 만날 수 있다는 神

  신을 알아챈다는 건 얼마나 많은 아픔을 견뎌야 하는 일인지

  전설의 노래에는 푸른 녹이 번져 나가고

  까마귀들은 저녁 하늘을 울며

  종소리처럼 날아올랐다

 

  내 안엔 내가 흐르는 운율이 있다

  돌아눕다가 휘어지거나 꺾이는 꿈엔 내성이 생겼다

  그 어느 지점을 더듬으며

  성호를 긋고 발성연습을 한다

  양동이에서 쏟아진 내 안의 새떼들

  그림자 없는 신의 발자국처럼

  어지럽게 날아오른다

 

계간 『시산맥』 2018년 봄호 발표

 

 


 

 

송연숙 시인 /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

 

 

  물 위에 도장을 찍는다

  뻐끔거리는 물고기 헛숨

 

  두 세 개의 칡덩굴 잎사귀가

  뛰어내릴 절벽을 타진할 때

  바람은 낙하의 틈을 골라 그네를 탄다

  몇 개의 태점이 어린 새의 부리처럼

  바람의 절벽을 쪼아댄다

 

  거친 숨소리의 붓질

  끊어지며 연결되는 선에서 노선비가 태어난다

 

  세속의 소리에 귀 닫은 계곡

  너럭바위에 턱을 괴고 엎드려 노인은 물을 바라본다

  잔물결 같은 미소 입가에 얻었으니

  번잡한 세월쯤은 잊어도 좋겠다는 표정이다

  물빛은 온몸에 스며들어 환하고

  바람소리 물소리 어울려

  한 덩어리 구름 반죽 같다

 

  바위는 간지럼을 잘 참거나

  모르는 존재

  물 끝은 쉼 없이 간지럼을 태우지만

  바위는 물을 마르게 한다

  웅덩이 만나면 웅덩이 메워 물고기 키우고

  고삐 없는 물줄기는 흘러가는 것이어서

  흘러갈 뿐이다

 

  물살 그림자 반짝인다

  갈대들이 날개를 펴고 후루룩 날아올랐을 뿐인데

  노인은 먼 그림 밖 눈目 하나를 차지했는지

  보이지 않는다

 

웹진 『시인광장』 2018년 5월호 발표

 

 


 

송연숙 시인

2016년 《시와 표현》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