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리 시인 / 제비꽃 꽃잎 속
퇴락한 절집의 돌계단에 오래 웅크리고 돌의 틈서리를 비집고 올라온 보랏빛 제비꽃 꽃잎 속을 헤아려본다.
어떤 슬픔도 삶의 산막 같은 몸뚱어리를 쉽사리 부서뜨리지는 못 했으니
제비꽃 꽃잎 속처럼 나 벌거벗은 채 천둥치는 빗속을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
내 몸을 휩싸는 폭죽 같은 봄의 무게여.
내가 부둥켜안고 뒹구는 이것들이 혹여라도 구름 그림자라고는 말하지 말아라.
네가 울 때, 너는 네 안의 수분을 다하여 울었으니
숨 타는 꽃잎 속 흐드러진 암향이여 우리 이대로 반공중(半空中)에 더 납작 엎드리자.
휘몰아치는 봄의 무게에 대적광전 기우뚱한 추녀 또한 뱃고동 소리로 운다.
월간 『문학사상』 2005년 4월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선 시인 / 그대에게 가는 배 한 척을 세우기 위해 외 1편 (0) | 2019.07.27 |
---|---|
노혜봉 시인 / 꿈아, 무정한 꿈아 (0) | 2019.07.27 |
최지하 시인 / 어떤 각오 외 1편 (0) | 2019.07.27 |
김신용 시인 / 도장골 시편 외 1편 (0) | 2019.07.26 |
이승희 시인 / 논둑에서 울다 2 외 1편 (0) | 2019.07.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