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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명리 시인 / 제비꽃 꽃잎 속

by 파스칼바이런 2019. 7. 27.

김명리 시인 / 제비꽃 꽃잎 속

 

 

퇴락한 절집의 돌계단에 오래 웅크리고

돌의 틈서리를 비집고 올라온

보랏빛 제비꽃 꽃잎 속을 헤아려본다.

 

어떤 슬픔도 삶의 산막 같은 몸뚱어리를

쉽사리 부서뜨리지는 못 했으니

 

제비꽃 꽃잎 속처럼 나 벌거벗은 채

천둥치는 빗속을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

 

내 몸을 휩싸는 폭죽 같은 봄의 무게여.

 

내가 부둥켜안고 뒹구는 이것들이

혹여라도 구름 그림자라고는 말하지 말아라.

 

네가 울 때, 너는 네 안의 수분을 다하여 울었으니

 

숨 타는 꽃잎 속 흐드러진 암향이여

우리 이대로 반공중(半空中)에 더 납작 엎드리자.

 

휘몰아치는 봄의 무게에

대적광전 기우뚱한 추녀 또한 뱃고동 소리로 운다.

 

월간 『문학사상』 2005년 4월호 발표

 

 


 

김명리 시인

198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물 속의 아틀라스, 『물보다 낮은 집』, 『적멸의 즐거움』, 『불멸의 샘이 여기 있다』, 『제비꽃 꽃잎 속』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