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규미 시인 / 이만 촌이라든가
벚나무 아래에서는 슬픔을 꽃이라 불러도 좋아
타닥타닥 타오르는 어둠의 심지와 말랑한 눈발들의 분분한 적막들 그 낱낱의 이름을 슬픔이라고 해 봐
그렇게 생각해 봐
금방 태어난 아가처럼 가만히 눈을 감은 물방울의 시간들이 가지마다 오종종한 저 머나먼 나무들의
수 천 수 만 꾸러미의 물색없이 뒤엉킨 실타래들을 투명한 물레로 가만히 자아 들이는 손가락 손가락들, 그
푸르고 흰 휘파람소리
존재의 절반이 자주 그늘인 건 어쩌면 나무들 탓이지 이만 촌이라든가 그 너머라든가 하는 생경한 이념의 거리보다
아득히 먼 시간 속 나의 할머니가 나무였다니
안개와 바람과 얼음의 동굴너머 유유히 빛나는 아침마다 초록빛 둥근 신전이었다니
어린 나무 한 가지처럼 허공에 기대어 심장에서 심장으로 다정히 타오르는 슬픔, 한번 꿈꾸어 봐
웹진 『시인광장』 2019년 5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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